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 유명한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에서도 꽤 우수한 실력을 과시했는데 안타깝게도 1번이 발표됐을 때(1897년 글라주노프의 지휘로 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 비평가들에게 크게 까이고 말았다.
이 사건은 결국 피아노 협주곡 2번과 같은 대작을 낳게 되는 결정적인 영향을 줬지만, 교향곡 작곡가로서의 라흐마니노프의 이름은 영원히 부각되지 못했다. 사실 교향곡 1번의 실패에 충격을 받은 라흐마니노프는 살아 생전 이 교향곡을 다시는 되볼아 볼 수 없게 만들었는데, 연주는커녕 악보조차 어디론가 팽개쳐 버려 사후 2년 뒤 리바이벌 연주때에 큰 애를 먹었다고 한다.
라흐마니노프은 그의 교향곡 패배에 크게 주눅들었지만,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성공에도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그의 다른 작품들은 모두 협주곡 2번의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짧고 다이나믹하게 끝나는 종결, 어둡고 병적인 색채들도 모두 협주곡 2번을 답습하고 있는데, 교향곡 1번으로 되돌아가 짚어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사건이 아닐 수 없었고, (지금 후대의 평가에 비추어보면) 라흐마니노프에 닥친 대재앙은 사실 1번의 실패보다는 그의 상실감이었다.
라흐마니노프의 1번은 왜 실패했을까? 그것은 지휘자(글라주노프)의 준비 안된 지휘탓도 있었지만 라흐마니노프의 개성이 드러나지 못한 때문이었다.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적인 정서에 입각, 선배 차이코프스키의 낭만주의를 모방했지만 라흐마니노프는 근본적으로 차이코프스키가 될 순 없었다.
그러므로 교향곡 1번은 라흐마니노프를 낳게 한 디딤돌, 희생양에 불과했는데 같은 뿌리, 같은 나무, 같은 가지였지만 서자의 서러움을 머금은 슬픈 교향곡이기도 했다. 첫사랑이 버림받기 쉬운 것은 그것이 너무 순수하기 때문일 것이다.
진지하다고해서, 강렬하다고 해서 그 사랑이 꼭 성취되라는 법은 없지만 순수가 상처받을 때 인간은 가장 큰 배신감을 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가끔 유리보도 위를 걷는 듯한 착각이 들곤하는데, 이는 예리하면서도 상처받기 쉬운 영혼… 곧 부숴질 것 같은 감성의 밀도 때문(일 것)이다.
마치 현대를 사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나할까. 인간은 보편적으로 상실의 아픔을 안고 태어난다. 혹독한 겨울…, 뺏고 빼앗기는 경쟁 사회 속에서 앞선 자와 뒤처진 자…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 속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영혼들은 이리뛰고 저리 뛰고, 상실의 시대를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누가 용기있게 선방을 날리느냐… 경쟁 시대를 사는 도시의 영혼들은 머리둘 곳이 없다. 가면을 쓰고 세상의 모습으로 사느냐, 민낯으로 용기있게 사느냐… 이리 저리 세상과의 인연에 집착해 보지만 영혼은 단 한 개의 보석도, 비밀도 없이 시들어만간다. 우리는 과연 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치열한 삶의 경쟁도 경쟁이지만 내면에서부터 오는 치열한 자기 싸움… 꿈을 펼쳐나가야 하는 투쟁도 만만치 않다. 때로는 코가 깨지고, 때로는 피투성이로 싸워야만하는 현대인은 불안하고 초조하기만하다. 이러한 현대인의 우울증 치료제로서, 라흐마니노프(의 음악)만큼 강렬한 특효약도 없다고 한다.
특히 진한 멜랑콜리가 강렬하게 가슴을 치는 (피아노)협주곡 2번은 (작년기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클래식 1위를 기록했다고 하는데, 이는 교향곡 1번에 비추어볼 때 거의 기적같은 부활이었다. 왜 현대인들은 라흐마니노프에 그처럼 열광하는 것일까? 그것은 상처입은 거인의 신음… 어둡고 진한 운명의 노크소리… 어쩌면 그 배경에 첫사랑의 아픔처럼 교향곡 1번이 짙게 내린 깔린 배경선율로서… 아마도 오늘날까지 그 恨으로 가슴을 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먹하나마 있는 그대로의 내면의 아름다움이 표출된 이 작품은 (오늘날) 교향악의 새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사실 그 진가는 처녀 작품의 수줍음… 상실을 견디어낸… 그 미완성이 주는 경이라고나할까.
<
이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