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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 못 할 위기는 없다

2016-09-26 (월) 11:4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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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경제 위기 맞은 아르헨, 부채 30% 탕감해줘야 피해 줄여

▶ 학계 경고에도 투자자들 모른척, 결국 통화가치 추락에 70% 손실

예측 못 할 위기는 없다
‘블랙 스완(Black Swan)’은 너무나 희귀한 검은 백조처럼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 그래서 대비하지 못한 돌발상황을 뜻한다. 생각지도 못한 사건인 만큼 충격은 상당하고, 재앙을 겪은 후 원인을 분석할 수는 있을지언정 미리 예견해 대비할 수는 없다. 반면 ‘회색 코뿔소(Grey Rhino)’는 그렇지 않다. 소만큼 덩치가 커 멀리 있어도 눈에 잘 띄고 2t에 육박하는 몸무게는 가까이 있지 않더라도 발밑으로 느껴지는 진동만으로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다.
예측 못 할 위기는 없다

■회색 코뿔소가 온다 <미셸 부커 지음, 비즈니스북스 펴냄>


세계 최고의 위기관리 전문가로 꼽히며 미국의 정치·경제 분야 싱크탱크인 세계정책연구소를 이끄는 저자 미셸 부커는 지난 2013년 1월 다보스포럼에서 이 개념을 처음 발표했다. ‘회색 코뿔소’란 “개연성이 높고 그것이 미칠 충격이 엄청난 위험을 상징”하며 “당연히 알아채야 하지만 자주 놓치는 위험 혹은 보고도 못 보는 척하는 위험”이다. 코뿔소는 사람을 몹시 경계하는 습성이 있는 만큼, 그 접근이 코를 비비거나 꼬리를 흔드는 등의 친근감일 거라고 기대한다면 착각이다. 코뿔소의 접근은 공격으로 이어질 뿐이니 다가온다고 느껴지면 피해야 한다.

저자는 중남미 금융문제 전문기자로 아르헨티나를 취재했던 2001년 당시를 예로 들었다. 경기 침체에서 벗어날 방법은 요원했고 투자자들은 아르헨티나 채권을 대량 처분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른바 ‘회색 코뿔소’가 콧김을 내뿜으며 육중한 몸으로 돌진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이를 감지한 저자는 학계와 월가(街) 일각에서 제기된 주장을 모아 “아르헨티나와 채권자들이 채무를 30% 탕감하는데 합의하면 나중에 더 큰 규모의 피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그러나 일부 은행가들은 채무탕감이 해결책이라는데 실제로 동의하면서도 해고당할 각오가 없는 한 실행할 수 없다고 거부했다. 어느 은행도 먼저 나서지 않았고 결국 9개월 후 아르헨티나의 통화가치는 추락해 30%의 채무탕감을 거부했던 은행들은 대략 70%의 손실을 입었다.

예측할 수 없기에 대비할 수 없는 ‘블랙 스완’과 달리 ‘회색 코뿔소’는 보이지 않는 위기신호를 포착해 대비할 것을 강조한다. 한낮에 대로를 걸어가다 갑자기 땅이 꺼지는 것이 과연 예측 못한 천재지변이라고만 볼 일인가?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지반이 약해지고 있음을 경고하는 신호가 산발적으로 있었고 급기야 ‘싱크홀’이 현실로 터지고 만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승부수가 ‘잘못될’ 가능성을 얕잡아보고 리스크보다는 장밋빛 전망에 시선을 빼앗긴다. 가능성은 낮지만 마음에 동요를 일으킬 만한 위험요소가 분명히 있음에도 여전히 장밋빛 전망을 포기하지 못한다.” (29쪽)

설령 눈앞의 위험을 확실하게 인지했어도 정치나 금융시스템이 제시하는 비뚤어진 유인책, 즉 단기적 성과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정책이나 잘못된 자원분배, 저평가된 리스크 등으로 인해 문제에 똑바로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위기 앞에 미적거리며 문제를 회피하는 인간의 본능과 위험을 인지하면서도 적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사회시스템을 함께 지적한다.

그렇다면 왜 회색인가? 저자는 “코뿔소는 이름이 흰 코뿔소든 검은 코뿔소든 혹은 수마트라 코뿔소든 자바 코뿔소든 인도 코뿔소든 모두 회색”이라는 말과 함께 정치·경제·인권·군사·환경 등 어떤 영역에서 어떤 색깔로 출현하든 코뿔소가 주는 충격은 대단하다고 경고한다. 책은 우리가 상대해야 할 회색 코뿔소의 종류, 즉 위기를 분류하고 어떻게 대응할지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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