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영
반짇고리에 오래된 실패가 하나 있다. 어머니가 나를 낳기 전부터 쓰던 것이라 했으니 육십년은 된다. 한 뼘 길이 손가락 두 마디 폭의 작은 물건이다. 부러진 대추나무 가지를 장인[匠人]에게 맡겨 손에서 놀리기 좋도록 여러 개 만들었다고 어릴 적 들은 기억이 있다. 한가득이던 실패더미는 이사 다니고 이민 오는 통에 대부분 없어진 지 오래고 무명실 감은 실패 하나만 골무 틈에 누워 있다.
실패의 벗겨진 칠 밑으로 원목이 보인다. 테두리는 원래 직각이었을 터, 지금은 다 닳아서 부드러운 곡면으로 되어 있다. 물건으로 만들어진 후 지녀온 품위와 기능은 깎이고 저하되어 형태만 남았을 뿐이다. 손 안에 들어오는 무게감이 보기보다 가볍다. 분명 그 정도 나무라면 느껴져야 할 무게가 있음에도 그렇지 않다. 나무도 사람처럼 수분과 근육이 마르고 줄어드는가. 병석에 누워 계신 어머니를 안아 올릴 때의 가벼움과 다르지 않다.
어머니는 이제 너무 가볍다. 내 어린 시절 양은 다라이에 들어앉게 하고선 등을 문질러 때를 밀던 힘은 고사하고 혼자서 몸을 곧추세울 기운조차 없다. 둘둘 말아논 이불처럼 그저 침대에 누워만 있다. 체내에 들어가는 곡식은 낟알을 셀 수 있을 정도고 마시는 물도 점점 줄고 있다.
손과 발꿈치는 닳아 해진 실패의 모서리처럼 반질반질하다. 호미를 쥘 힘도 없고 흙을 밟을 일도 없으니 그들만 호사를 누리고 있다. 얇은 피부는 하얀 습자지처럼 투명하여 속살이 들여다 보인다.
실패는 반짇고리 안에서 평생을 지냈다. 어머니가 이십 년 전 고국에서 마지막 사용 후 거기서 나온 적이 없다. 바늘 하나 겨우 꽂아 둘 정도의 무명실을 감아놓은 채 어머니는 사용하지 않았다. 아내도 어머니가 남겨 놓은 실만큼은 왜 그랬는지 쓰지 않았고 여태껏 반짇고리에 보관해 왔다.
실패에는 어머니의 얼굴이 담겨 있다. 벗겨지고 해진 곳은 어머니의 피부 같고 실패에 박힌 두 개의 자개는 눈처럼 보인다. 칠을 한 후 자개를 박아 넣었는데 신통하게도 아직 오묘한 빛을 발하고 있다.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빛을 잃지 않은 자개처럼 어머니의 눈은 흐린 적이 없다.
누워 계시니 방바닥의 먼지와 머리카락만 찾아낸다. 에미야 하며 아내를 불러 청소하라 독촉하고 과자 부스러기 물고가는 개미 잡으라며 온종일 성화다. 기억력이 생생할 때 찍어둔 가족사진중에 어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장면이 있다. 일곱 자식 중 혈액형이 동일하고 외모가 많이 닮은 나만 바라본다는 생각이 든다. 이 나이 되도록 안경을 안 쓰는 것도 어머니의 시력을 물려받은 덕택이다.
낡은 실패를 보면 어머니와 가난으로 고생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사학년부터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는데 우리 집엔 늘 쌀이 부족했다. 아침 준비할 쌀이 없을 때 어머니는 학교에 그냥 가라고 했다. 오전 중으로 어머니는 어떡해서든 도시락을 마련해 학교로 찾아왔다. 자식을 두 끼나 굶길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방과 후 집에 오면 어머니는 말없이 실패꾸러미를 매만지며 해진 옷이나 꿰매고 있었다. 어머니는 점심조차 하지 못했다.
육학년 때에는 가방을 학교에 두고 집에 와야 할 때가 많았다. 그동안 밀린 육성회비를 졸업전에 받아내려고 부모님을 모셔오라는 학교측의 압력이었다. 집에 와본들 대책이 없다는 것을나는 알고 있었고 어머니도 가방의 행방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
가방이래봐야 끊어진 손잡이는 혁대 자투리를 덧대어 무명실로 누볐고 튿어진 밑바닥은 광목을 두어 겹 대고 한 땀 한 땀 기어 수선한 거였다. 다음 날 다시 가져오면 되고 없어져도 그만일 뿐이어서 이런 일들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는 게 우리 집의 대응이었다. 시간은 빨리 흘러주었고 자식들은 모두 어머니 곁을 떠났다.
어머니 앞에 반짇고리를 내놓아 보았다. 별 반응이 없었다. 무엇이냐 물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선을 돌렸다. 골무를 손가락에 끼워보니 손을 움추렸다. 시집올 때 가져온 무쇠 가위는 무서우니 저리 치워 하였고 기억 안 나느냐 물어도 몰라 소리만 했다. 바늘을 빼내고 실패를 드려보니 어머니는 만지작거리며 실이 하나도 없네 했다. 이리 주세요 해도 내놓지 않았다. 실패만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반짇고리에 실패가 한가득이었던 걸 기억한다. 그 많던 실패는 다 어디 가고 지금은 닳고 해진 빨간색 실패만 하나 남아 있다.
실패를 손에 쥔 채 잠이 든 어머니의 얼굴을 보듬는다.
<입상 소감>
원고를 접수하던 분께서 e-mail을 보내왔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작년 이맘 때, 아무 통지가 없어 낙방했음을 알았기에 e-mail 도착으로 강한 확신이 앞섰다.
참 기쁘다.
문단에 내 이름 석 자가 올려졌으니 이제는 언행을 가리고 더욱 책을 가까이 할 일이다.
좋은 글을 만들어 명예의 전당에 한 점 부끄럼이 없어야겠다.
한창 돈 벌어야 할 나이에 일 대신 책 붙잡고 있는 남편을 탓하기는 커녕 행여 글 쓰는데 방해될까 발소리조차 조심하던 아내와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
<
장덕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