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래감옥에 갇힌 두 남녀의 고독과 욕정
▶ 설치예술가 히로시 테시카하라 감독
1960년대 국제적 예술영화의 선풍적 인기를 모았던 이 영화는 극도로 제한된 한계상황 속에 처해진 인간의 심리상태와 역설적인 삶의 테두리와 신비를 탐구한 실존적 얘기다.
작품에서 인간과 사회의 공존관계를 추구해온 일본의 히로시 테시카하라가 감독했다. 그는 유명한 설치예술가이기도 했는데 다른 영화로는 ‘타인의 얼굴’ (The Face of Another)이 있다‘. 모래집 속의 여인’은 고보 아베의 동명소설이 원작으로 작가가 각본도 썼다. 칸영화제 특별심사위원상 수상. 오스카 외국어영화와 감독상 후보작. 상영시간 147분.
꺼칠꺼질할 정도로 사실적이면서도 주인공이 갇혀진 상태에서 비로소 자유와 자아 그리고 삶을 인식하는 내용이 매우 역설적이고우화와도 같아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느끼게된다. 아런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의 혼재된 느낌은 감독의 다른 여러 작품을 촬영한 히로시 세가와의 눈부시게 아름답고 원시적 선정성을 발산하는 흑백촬영에 의해 더욱 강조된다.
모래에도 생명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이같은 현혹적인 촬영과 아울러 일본의 클래시컬 음악 작곡가로 쿠로사와의‘ 란’(Ran)을 비롯해 많은 영화음악을 작곡한 토루 타케미추의 모래의 호흡과 미끄러져 내리는 행동을 불길하게 묘사한 음악이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줌페이 니키(에이지 오카다-‘히로시마 내사랑: Hiroshima Mon Amour’ )는 30대의 교사로 아마추어 곤충채집가. 그는 어느 날 바닷가 마을로 곤충채집을 나갔다가 막차를 놓치면서 마을사람들에 의해 깊은 깊은 모래언덕속의 한 집으로 안내된다. 다 쓰러져가는 집에는 여인(교코 기시다)이 혼자 사는데 그녀는 모래바람에 남편과 아이를 잃은 과부. 여인은 남자에게 저녁대접을 한 뒤 계속 흘러내리는 모래를 퍼내기 위해 나간다.
남자가 이튿날 잠에서 깨어나니 외부세계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밧줄사다리가 없어져버렸다. 그는 이 때부터 마을사람들에 의해 여인과 함께 모래집 속의 포로가 되고 만다. 그리고 그는 여인과 함께 음식과 식수를 조달받기 위해 모래를 열심히 퍼내면서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나 번번이 실패한다.
모래감옥에 갇힌 두 남녀는 짐승의 고독과욕정에 못 이겨 자포자기적으로 폭력적인 섹스에 몸을 던진다. 모래범벅이 된 발가벗은 둘이 손가락으로 서로 상대의 피부를 파들어가는 장면이 매우 에로틱하다. 남자는 마치 시지퍼스처럼 모래푸기와 섹스를 거듭하면서 줄기차게 자유를 찾아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마침내 모래언덕 밖으로 빠져나온 남자는 그러나 “아직 달아날 필요가 없어”라면서 다시 모래언덕 속으로 내려간다. 마지막 장면은 7년간 소식이 없는 남자의 공식 실종을 적은 경찰보고서로 끝난다.
남자는 왜 천신만고 끝에 찾은 자유를 포기한 것일까. 자유는 선택 의지에 따른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거부해온 현실을 인지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소 영혼의 자유를 찾은 것이다.
원작자와 감독은 도쿄의 관료적이요 지루한 삶을 피해 밖으로 달아나 곤충채집에 몰두하는 남자를 그가 채집한 곤충처럼 모래집 속에 가둔 뒤 그의 행동과 심리를 관찰한다.
남자는 채집자에서 채집품이 된 역설 속에서 본격적으로 삶과 직접대결을 하게 된다. 실존의 경험이란 이렇게 혹독한 것이다.
두 남녀와 모래가 주인공인 영화는 별 사건이 없는 내용인데도 매우 치열하다. 우리 속에 갇힌 사람들의 한껏 충전된 긴장감과 동물적 본능이 서스펜스 스릴러 심리영화를 보는것 같다. 기술적으로도 구조미가 뛰어난 영화로 독창적이고 시적이며 에로틱하고 강렬한 힘과 열정이 엄습해 오듯이 충격적인 작품이다. 보고 있느라면 마치 최면에 걸린 것 같다.
블루-레이(Blu-ray)와 DVD 합판으로 나왔다.(사진)
*‘꿀맛’(A Taste of Honey·1961)-혁명적인영국의 뉴웨이브영화. 노동자 계급 서민층의삶과 그들의 남녀관계를 사실적으로 그린 토니 리처드슨 감독(톰 존스) 작품으로 연극이원작. 산업도시 맨체스터에 사는 방황하는 10대 소녀(리타 투싱햄)가 경제적 어려움과 자기만 아는 어머니와의 삶 속에서 자신의 삶의좌표를 찾기 위해 애를 쓴다.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사람들의 얘기를 민감하면서도 가차 없이 진실하게 그렸다. 흑백.
*‘뮤리엘, 또는 돌아올 때’(Muriel, or theTime of Return·1963)-‘히로시마 내 사랑’의 프랑스 감독 알랑 르네작품. 시간과 기억에 관한 극단적인 고찰. 골동품점을 경영하는 미망인(델핀 세릭)이 과거의 애인이 자기 삶에 다시 등장하면서 과거의 기억에 시달린다. 한편 알제리전쟁에 참가했던 여자의 의붓아들은 나름대로 전쟁의 휴유증에 시달린다. 컬러.
*‘터치 오브 젠’(A Touch of Zen·1971)-시각적으로 눈부신 중국 검술영화로 ‘드래곤인’을 만든 킹 후감독 작품. 도망자의 신분으로 어머니와 함께 한적한 동네의 폐가에서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사는 귀족여인 양이 자신을 쫓는 칼 잘 쓰는 암살자에 의해 신원이 들통이 나면서 유혈 칼부림이 일어난다. 액션장면이 장관이다. 칼러. 18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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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