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는 나에게 가장 잔인한 10년(decade)이기도 했지만 또 가장 아름다운 시기이기도 했다. 이유는 그 때가 바로 (가장 황홀한) 10대였기 때문이었다. 10대가 좋은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저 이웃집 멍멍이들처럼 아무리 화나고 우울한 일도, 금세 잊어버리고 멍, 멍, 해피하게 되는 시기이기 때문은 아닐까? 조금만 괜찮은 영화를 보아도 한동안 감상에 젖어 가을바람처럼 산들산들, 산다는 낭만을 온몸으로 느끼는 시기도 그 때일 것이다.
다소 음울했던 사회적(or 정치적) 분위기는 그렇다치고, 70년도의 세상은 그런대로 살만했다. 주머니에 60원만 있으면 짜장면으로 점심을 때울 수 있었고, 다방 커피가 20원이었던가… 아무튼 백원만 있으면 3류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때리거나 다방에 온종일 죽치고 앉아 칙칙한 음악을 들으면서 느긋하게 폼잡고 있을 수도 있었다. 포장마차(그 때는 작은 달구지였음)의 찐빵과 만두는 또 얼마나 맛있었는지… 거리는 다소 뿌연 먼지가 폴폴거렸지만, 경직된 사회분위기에 비하면 인심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산업전선에선 허리가 휘도록 밤일을 해대는 여공들이 있는가 하면 한쪽에선 밤하늘의 트럼펫 소리… 색소폰 소리에 젖어, 나이트 클럽의 휘황한, 휘청거리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인생이 뭐 그저 그런거지… 모두들 세상일을 잊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까? 비슷한 음율의 파열… 같은 선율의 반복… 매일 뜨는 해와 같이 똑같은 일상의 반복같은, 다소 허무주의의 비애가 (색소폰의 음율에) 가득 묻어나는 ‘가방을 든 여인’이 (크게) 유행했던 것도 그때였다.
너도나도 집집마다 전축의 캐비넷안에 (‘가방을 든 여인’이 수록된) 경음악판 한 두개 없는 집이 없었으니 어디서나 들을 수 있었던 같은 음악의 반복과 지루함은 가끔은 달려가 부숴 버리고 싶을 만큼 공해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것은 또 어느 순간 그 음악이 들려오지 않으면 어딘가 나사 하나 빠져 버린 것처럼… 허전함을 느끼게 된 것도 삶의 참 알 수 없는 아이러니기도 하였다.
지금도 경음악 ‘가방을 든 여인’ 을 들을 때마다 (이 음악을 좋아했던) 입원실의 목발짚은 소녀… 칙칙한 음악들이 깔려오던 변두리의 다방… 유난히도 덥곤했던 서울거리가 떠오르곤 하는데 그것은 음악이 주는 추억 때문만이 아니라, 색소폰의 칙칙한 낭만… 어딘가 인생을 닮은 그 반복적 선율의 묘한 뉘앙스… (지나간) 청춘의 그 알 수 없는 설레임 때문인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날로그 시대가 안겨주는 센슈얼함이라고나할까? 어딘가 토마토 소스향이 풍겨오는 외계의 동경… 추억의 음악으로서, 감성의 미아가 되게 만드는 낭만의 색소폰… ‘가방을 든 여인’은 경음악으로서 많은 사랑받았는데 특히 한국인들의 정서에도 맞아 떨어져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경음악 10권에서 내려온 적이 없었다고 한다.
발레리오 추를리니 감독이 연출한 ‘가방을 든 여인(La Ragazza Con La Valigia - Girl with a Suitcase, 1961)은 제2의 알랭들롱이라고 불리었던 자끄 페렝, 마를린 몬로 등과 더불어 세계 3대 섹시스타로 불리는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주연한 애틋한 흑백영화였다. 가방을 든 채 남자에게 채이는 여인 ‘아이다’와 남자 친구의 동생 ‘로렌조’(16세)와의 풋사랑을 안타깝게 그리고 있는데, 음악은 이 작품의 주제음악은 아니었고 원래 ‘Just that same old line’이라는 팝송을 섹소폰 주자 Fausto Papeti가 불러 히트한 곡으로, (영화에서는 두 주인공의 해변신에서 주변의 가게에서 잠깐 흘러갈 뿐인데) ‘가방을 든 여인’의 타이틀곡처럼 알져지게 됐다고 한다.
무인도의 삶… 음악이 없는 삶은 낙엽이 없는 가을처럼 공허하다. 삶이 우리를 향해 닫혀버릴 때조차도 우리는 여전히 삶을 짝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추억의 연인을 떠올리게 하는 무드 음악… 비를 맞고 무한정 걷고 싶게 만드는, 낭만의 일탈이 필요할 때… 가을비처럼 촉촉히 젖어오는 LP(음반)의 향수… 그 시대, 그 거리를 떠올리며 ‘가방을 든 여인’을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