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정훈 기자의 앵콜 클래식]가고파

2016-06-30 (목) 03: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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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덧 여름… 긴 방학이 이어지는 계절이다. 6월이 되면 들로 산으로, 식물채집이다 곤충채집이다 즐겁게 뛰어 놀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곤 한다. 특히 방학이 되면 외갓집에 놀러가서 시골 분위기에 젖어들던 때가 그립곤 하다. 물론 그것은 고향을 그리는 진정한 향수는 아닐 테지만…. 왜냐면 내가 태어난 고향은 서울이기 때문이다.

봄이면 진달래 피고 개나리 아른한 아름다운 전원이 아니라 갯가에 꾸정물 흐르고, 지붕이 덕지덕지 개딱지처럼 붙는 그런 도시 한 가운데서 태어났다. 나의 어린시절은 새벽 우유… 신문 배달하는 외침 소리에 깨어나, 어린 동생들이 빽빽 우는 소리와 함께 성장했다. 이름하여 베이붐세대…. 식사시간에는 뺑 둘러앉은 머릿수가 늘 대 여섯은 되었고 배를 골던 이웃집 아이들까지 합세할 때면 열이 넘을 때도 있었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티없이 맑거나 순수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길에는 일찍부터 학교를 그만둔 공돌이 소년… 거리를 배회하는 (불량)청소년들도 많았다. 교실은 콩나물시루로 넘쳐났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살 수밖에 없었던 베이비붐 세대의 아이들은… 자신을 (마음껏) 표현하기보다는 늘 발톱을 숨기고 살아야 했으며 1등이 되는 것이 늘 버거웠고 , 그래서 경쟁이 두려웠으며 많고도 많은 것들 중에서 치열하게 자기만의 것, 개성을 찾지 않으면 안됐던… 우리의 세대의 삶은 정말 힘들고도 고달펐다.


교실은 석탄이 부족해서 늘 화력이 그저 그랬고… 추위에 떨며 수업을 받으면서도 종례시간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옥수수 빵을 나누어주곤 했던 것이 그것이었다. 씹으면 껄끄러운 촉각이 입안에 가득했지만 어쩌다 옥수수 빵을 받는 날에는 괜히 기분이 좋아 신발주머니를 하늘 높이 던지면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길은 포장이 안돼 늘 먼지가 폴폴 날렸고 지나가는 군용차량들에선 맹호부대니, 청룡부대니… 월남 파병 용사들을 격려하는 군가들이 들려오곤 했었는데, 그중에는 김동진 작곡의 곡도 꽤 있었다.

제행무상이라했던가…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가 버린 세월은 결코 되돌아 오지 않는다. 살면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추억들… 그 파편들이 강이 되고, 그리움이 되어 파도처럼 몰려오지만, 가고파도 갈 수 없는 곳… 건널 수 없는 다리가 되어 恨으로 되돌아 올 때 사람들은 절규처럼 가고파를 고함치며 두고 온 고향을 노래하곤 한다.

누구에게나 고향은 있다. 그것이 비록 사막이요, 빼앗긴 들… 삭막한 삶의 현장이라 하더라도…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요 그 잔잔한 고향바다/… 김동진하면 떠오르는 가곡… ‘가고파’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사랑하는 국민가곡이다.

더욱이 ‘가고파’를 통해 우리는 김동진 등이 살았던 시대적 아픔(등)을 유추해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나라 잃은 설움… 그리고 그들만이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恨의 절대감이다.

요즘이야 옛날이 그리우면 ‘응답하라 88’이니 드라마니 사극 등으로 그리움과 한을 어느정도 위로받을 수 있지만 일제시대에는 고향이 그립다는 것 자체가 빼앗긴 들에 찾아오는 봄… 절망 그 자체였을 것이다. 가고파도 갈 수 없는… 의식 속에서 이미 빼앗겨 버린 들녘… 그 절실한 恨이 드러나 있는 이 작품은 김동진이 숭실전문학교시절 은사 양주동으로부터 배운 뒤 감동을 받아 작곡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동진이 당시 만 20세 되던 해 1933년의 일이었다)

‘가고파’의 시인 이은상의 고향 마산 앞바다(합포만)를 그린 작품으로, 작곡 직후 교회 등에서 불리우다가 해방 후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 1984년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가곡 1위에 오르기도 했다.

- 어디간들 잊으리요 그 뛰놀던 고향동무… 보고파라 보고파… 장중하면서도 아름다운 이 작품은 김동진의 다른 대표작 ‘내마음’ 등과 함께 한국 가곡의 방향을 규정했다고 평가받고 있는데, … 그리움으로 색동옷 입혀… 가고픈 고향을 마음껏 떠올리게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가곡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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