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 (105) 미국의 산업화 시대 (1865-1900) ⑧

2016-05-20 (금) 조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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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산업의 개발

미국 사람들은 전기가 발명되기 전까지 등유를 써서 조명을 하고 살았는데 등유가 귀하고 값도 비싸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마다 다 등을 켜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해가 지면 일찍 잠자리에 드는 일상생활을 하고 있었다.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잘 타고 냄새가 나지 않으면서도 싸고 안전한 등유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나무나 채소등에서 뽑아낸 기름을 써보았고 물고기, 고래등의 어류와 기타의 동물에서 얻은 기름을 썼으나 모두가 만족스럽지 않았고 송진과 alcohol을 섞은 등유도 만들어 보았으나 폭발성이 있는 개스가 나오는 등 여러 가지 단점들이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1850년에 석탄에서 뽑아낸 Kerosene 이라는 등유가 발명되었다. Kerosene 은 다른 등유 들이 가진 문제점들이 없는 데다가 탈때에 냄새도 나지 않는 좋은 등유였는데 한가지 큰 단점은 값이 비싼 것이었다.


펜실베니아 서북부 지역에는 연못이나 호수등의 물위에 출처불명의 기름 (oil) 이 떠 있는 곳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 기름을 떠내어서 약으로 썼었다. 기름이 떠 있는 현상은 오래 전부터 계속된 것이어서 특별한 관심거리가 되지 못하고 있었는데 기름을 채취하기도 쉽지않았고 약이외로는 기름의 정확한 용도도 몰랐고 판로도 형성되지 않았던 까닭에 기름을 상용화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고들 있었다.

이 기름을 상업용으로 개발해볼 생각을 했던 George H. Bissell 이라는 사람이 1850년 대 중반에 Pennsylvania Rock Oil Company를 창립하여서 연못에 기름이 뜨는 펜실베니아 서북부 지역의 땅을 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Bissell 은 기름을 약용으로만 팔아서는 채취하는 비용도 다 나오지 않아 타산이 맞지않음을 곧 알게 되었다. 그는 기름을 약용 이외에 다른 용도로 쓸 것이 없는가를 고심하게 되었다.

그는 예일 대학교의 유명한 화학자 Benjamin Silliman, Jr. 교수에게 5백달러를 연구비로 지불하면서 기름의 약용이외 다른 용도를 연구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이때 쯤에는 Rock Oil 이라고 불리거나 Greek 어 원어대로 Petroleum 이라고도 불리던 이 석유를 연구한 Silliman 교수는 아주 저렴하고 손쉬운 방법으로 석유에서 Kerosene 에 못지 않은 양질의 등유를 만들어 내는 기술을 개발하였다.

옛날 농촌에서 우리 할머니들이 곡식으로 만들어진 술원료를 넣고 끓는 솥에서 나오는 증류를 냉각시켜 소주를 빚어 내었던 것과 원칙적 으로는 비슷한 방법으로 석유를 가열해서 증류화시켜서 기체가된 석유를 냉각 시키면 Kerosene 에 못지않는 등유가 되는 것이었다.

이 새 등유는 하얗고 밝은 빛을 내었으며 냄새가 나지 않고 폭발의 위험성이 없었다. 비교적 손쉬운 기술과 시설로 등유를 저렴하게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된 것이었다. 실로 역사의 한 전환점에 이른 대발명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그 무렵부터 점차적으로 많이 쓰이기 시작하던 바퀴축이나 기계류의 치차등에 석유를 치면 마모를 방지하고 소리가 적게 나도록 만드는 훌륭한 윤활유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석유를 소정의 목적을 위해서 가공하는 과정 에서 부산품으로 나오는 것이 gasoline 이라는 휘발성이 강하고 폭발적 발화성이 있는 위험물질이었다. Gasoline 은 조심해서 버려야 하는 골치아픈 위험물질이었다. 그러나 1900년대에 들어와서 internal combustion engine 이 발명되고 헨리 포드가 염가로 자동차 를 대량 으로 판매하기 시작하자 Gasoline 은 하룻밤 사이에 위험스러운 폐기물에서 “Golden Honey” 로 둔갑했다. 이제는 연못 위에 뜨는 석유를 떠내는 정도 가지고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소금은 바닷물을 끓여서 만드는 바다소금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남북미대륙에는 산이나 땅속에 돌같은 소금들이 매장되어 있어서 그것들을 채광하는 염광들이 많이 있다. 겨울에 눈이 많이 올 때 시청이 도로 위에 뿌리는 소금이 염광에서 캐낸 rock salt 이다.


페루같은 나라는 지하로 파이프 를 박아 뽑아올린 염수를 처리하여 소금으로 만들어 쓰고 있다. 석유가 연못에 뜨던 펜실베니아 서부지역의 염광에는 더러 석유가 고이는 곳들이 있었다. 석유가 나오기 시작하면 염광으로서는 불량한 것이 되었겠지만 석유의 다양한 용도가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광주들은 홈을 파내어 가면서 석유를 채취하기 시작하였으나 그런 소극적인 방법으로서는 수요를 전혀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어느날 Bissell 은 염수광산에 염수 파이프를 박다가 지하 400 피트 지점에서 부터 나오기 시작하는 석유를 팔겠다고 염광주가 광고를 낸 것을 보았다. Bissell 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염수를 퍼내려고 파이프를 박았는데 석유가 나왔다? 그러면 애초에 석유 를 뽑으려고 파이프를 박아놓으면 석유가 나올 것이란 말인가!” 그는 석유를 뽑아내려고 파이프를 박아내리면 석유가 나올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석유를 뽑기위한 파이프를 박으려 하였으나 “Drilling for oil, You crazy!” 라는 시큰둥한 반응만 사람들로부터 받았다.

수소문 끝에 염수 drilling 에 경험이 많은 기술자를 구해서 기름이 연못에 많이 뜨는 Titusville 에서 1859년 6월부터 파이프 를 박기 시작하다가 8월에 70 피트쯤 뚫고 내려간뒤 이틀 만에 작업장에 두 사람이 다시와서 봤더니 파이프에서 석유가 흘러 나오는 것을 발견하였다. 1860년부터는 펜실베니아 서북부지역은 채유업자들로 몹시 붐비기 시작하였고 Oil City, Oilapolis, Petroleum Center 등의 새 타운들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

<조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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