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슬픈 빗물

2016-05-17 (화) 08:15:27 대니얼 김 그린벨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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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에 내린 폭우와 함께 쏟아진 우박으로 인해 집 오른 쪽 벽을 따라 뒤뜰 정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새로 만든 꽃밭에 봄, 여름, 가을을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해 심어 놓은 다년생 꽃들이 몸통의 일부분만 남기고 사지가 잘려나간 처참한 모습으로 사생의 귀로에 처해 있었다. 나는 목재상에 가서 토사 붕괴를 막을 두꺼운 각목을 사서 경사진 꽃밭의 하단에 각목 두 개를 겹쳐 이층 벽을 만들고 움푹 파진 골에 흙을 다시 채워 넣었다. 형체만 겨우 알아볼 수 있는 어린 꽃들의 주변에는 멀치를 보강해서 폭우가 쏟아지더라도 비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 놓았다.
복구 작업을 끝내고 우박을 맞고 쓰러져 있는 어린 꽃들을 바라본다. 이 상처받은 꽃들을 보니 한국에 나가 있는 아내가 생각났다. 3년 동안 치매로 병상에서 눈을 감고 아무도 인지를 못하고 죽은 듯이 누워 임종을 가다리는 장모님의 병상을 지키며 살아생전 어머니를 지근에서 잘 봉양하지 못한 죄책감으로 오열하고 있을 아내를 생각한다.
슬픈 빗물은 나의 아내의 가슴에만 내리지 않는다. 7년 전 옥시 가습기 살균제를 썼다가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소방대 구급대원 김덕종 씨의 찢어진 가슴에도 슬픈 빗물이 핏물이 되어 고여 있다. 런던 옥시 본사를 방문해 일인 시위를 하며 항의를 해 보건만 돌아오는 답은 공허한 메아리 뿐 이었다. 1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는데도, 정부는 부처마다 책임 떠넘기기만 하고 침묵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고, 옥시 가습기 참사에서도 정부는 쏙 빠진 채 뒤에 숨어 있다.
정치란 무엇인가. 국리민복이 정치다. 사후 약방문으로 뒤늦게 엎드려 절 받기의 모양세가 되었지만 정부가 나서서 옥시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철저한 피해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어머니를 여의고 슬픔의 심연 속에 빠져 있는 사랑하는 나의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아이를 잃은 김덕종 씨에게 나는 K. 리들리의 시 ‘그대를 사랑하기에 나는 오늘도 행복합니다‘를 바친다.
“오늘도 나는/ 그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합니다./내 마음에서 사랑이 식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더 뜨겁게 타오르는 것은/오직 그대가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힘겨운 짐을 지고 외로이 길을 떠나는 인생일지라도/ 그대를 사랑하는 마음 지속된다면/나는 늘 행복할 것입니다.”

<대니얼 김 그린벨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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