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으로 사회문제 돕고 싶어”
2016-03-25 (금) 08:10:13
이정은 기자
최고의 명문인 미국의 하버드 대학(원) 합격! 어떤 이들에게는 인생 최고의 목표이기도 하고 아무리 애써 노력해도 모두가 문턱을 넘을 수 없는 학교임에 틀림없다.
반면 처음부터 목표로 삼지는 않았지만 그저 주어진 순간을 열심히 살다보니 여기까지 왔을 뿐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라며 한사코 인터뷰를 주저하던 사람. 바로 올 가을 하버드 대학원의 동아시아종교학 석사학위 과정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을 앞둔 세등 스님(사진)이다.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세등 스님의 ‘어쩌다보니’에는 어떤 인생 여정이 담겨 있는 걸까? 어두운 세상에 한줄기 빛이 되라는 의미로 ‘세등’이란 법명을 받고 출가한 것이 고등학교 졸업 직후였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결국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 누울 자리 한 평 밖에 남지 않는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며 의미를 찾아보고자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가를 결심했다고.
한국에서 가장 큰 통도사로 출가해 은해사 조실 혜인 큰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승가대학과 율원까지 마친 후 동국대학에 입학했지만 도시 생활이 힘들어 중퇴했다. 그래도 학업을 계속하라는 주위의 권유로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 윈난 대학교에서 현대중문학과 전공으로 대학을 마칠 즈음 미국으로 건너올 기회가 열렸고 럿거스 뉴저지 주립대학의 동아시아학과를 졸업하며 학업을 이어갔다.
미국에 온 뒤 뉴욕원각사와 오리건의 보광사 등을 거쳐 출가동기 스님이 있던 뉴저지 원적사로 오는 동안 예전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회 문제에 대한 인식이 점차 커졌다. 승려로서 수행생활을 해왔지만 번뇌하며 깨달음을 얻으려던 자신은 행복해졌어도 정작 밖의 세상은 전쟁처럼 살고 있더라는 것.
세등 스님은 “스님은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다보니 결국 스님이 된 후 20여년간 너무 받기만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제는 내가 사회에 무엇인가를 해줄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커졌다”고 말했다. 일반인들이 쉽게 꺼내기 힘든 부의 불평등과 부당한 사회의 계급구조까지 종교인이기에 좀 더 자유롭게 접근하고 도울 수 있는 부분을 찾고 싶었다고.
그 일환으로 하버드 이외에도 컬럼비아 등 여러 명문 대학에 지원해 합격 통보도 여럿 받았지만 학교 명성보다는 전액 장학금 혜택을 제시한 하버드 대학이 인근 보스턴에 조계종 문수사 사찰이 위치한 지리적 이점까지 있어 여러 조건이 가장 좋아 선택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어디를 가든 이삿짐이라곤 달랑 라면 상자 2개 분량뿐이라는 세등 스님은 “부처님 덕분에 꿈도 꾸지 않았던 하버드에 입학하면서 가방끈을 늘리게 됐다”고 웃으며 “스님 생활이 공부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자신이 남보다 실력이 출중한 것도 아니지만 명상을 오래 한 덕분에 집중력이 좋아져서 학습효과를 높일 수 있었던 것이 일반 학생들과 가장 큰 차이라고. 더불어 “무엇을 하든 열정적으로 하면 된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julianne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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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