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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감독이라고만 하기에는 부족하다

2016-03-0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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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향’ 연출 조정래

그를 감독이라고만 하기에는 부족하다
“포기 자체가 안 됐다. 나한테는 운명 같은 영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극화한 ‘귀향’은 조정래 감독(43)이 무려 14년 간 품어온 영화다.

2002년 ‘나눔의 집’으로 봉사활동을 갔다가 강일출 할머니의 그림‘태워지는 처녀들’을 우연히 보고 밤새 써내려간 시나리오는 쉽게 영화제작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금맥 같은 소재이면서도 대중성이 없고, 너보다 더 유명한 감독도 도전했지만 좌초된 게 바로 위안부 소재 영화”라는 이유로 영화화에 난항을 겪었다. 그러다 2014년 11월16일 유튜브에 올린 티저 영상이 뜨거운 반응을 얻으면서 7만5270명의 후원과 제작진의 재능기부가 잇따랐고 극적으로 완성, 개봉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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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세 청년은 어느덧 40대가 됐고 그 사이 국악합창단 창단실화 ‘두레소리’(2011)와 독립야구단 고양원더스의 감동다큐멘터리 ‘파울볼’(2015)을 개봉했다. ‘귀향’은 조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이 됐다.

조 감독은 1992년 중앙대 영화과에 입학해 이듬해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1993)를 보고 판소리에 꽂혀 소리를 배우러 다니기도 했다. 나눔의집에 간 것도 북 치는 고수로 참여한 것이었다. 무형문화재 판소리 고법 이수자다.

오랫동안 포기하지 않고 프로젝트를 이어온 원동력에 대해 조 감독은 “꿈”을 언급했다. “불타고 있던 소녀들이 하늘로 올라가 날아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꿈을 꿨다. 너무 강렬했다. 그때부터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 얘기를 했다. 주변사람들 증언에 따르면 내가 입만 열면 ‘귀향’ 이야기고, 다른 주제로 대화가 시작돼도 결국은 ‘귀향’으로 끝났다고 하더라.”

조 감독의 집념에 탄복해 이 프로젝트에 합류한 이도 적지 않다. 임성철 PD가 대표적이다. 조 감독은 “우리 영화에 목숨 건 또 다른 사람이 임성철 PD”라고 말했다. “김구 선생의 외종손인데, 극중 일본군 악역을 맡았다. 원래 화가다. 7년 전 우연히 만났는데 내가 무턱대고 일본군 악역을 제안하면서 2시간 동안 ‘귀향’ 이야기를 했다더라. 처음에는 정신 나간 사람인줄 알았는데, 얼마나 간절하면 그랬겠느냐는 생각에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끝까지 살아남은 소녀들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일본군 조장 기노시타 역의 정무성도 빼놓을 수 없다. 재일교포2세인 김씨는 어릴 적 연기를 꿈꾼 적이 있는 사업가로 든든한 후원자를 자청했다.

“연기자를 물색하던 중 만난 사람의 일행이었다. 악역을 제안했더니 자신은 연기자가 아니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무슨 내용이냐고 물어서 설명했더니 그 자리에서 울더라. 마침 아버지 고향이 영화의 배경인 고창이었다. 일본어 지도 선생부터 번역자, 제작부 막내, 후원자 그리고 일본군 조장 기노시타 역할까지 일당백을 해줬다.”

어렵게 완성됐으나 개봉이 불투명해졌을 때 그는 말했다. “나는 괜찮다. 덕분에 거창에 가 선조 무덤을 찾았다. 나는 벌써 귀향했다. 개봉이 확정되고 얼마 전 요코하마에서 후원 시사회를 했는데 너무 감동받았다, 행복하다고 했다.”


‘귀향’은 1943년 열 네살 소녀 정민(강하나)이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에 이끌려 같은 처지의 소녀들과 ‘지옥’을 겪게 되는 이야기와 실제로 고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최초 증언한 1991년, 열여섯 살 신녀 은경(최리)이 생존 할머니 영옥(손숙)의 ‘괴불 노리개’를 통해 위안부 소녀의 아픔을 느끼게 되는 이야기가 교차 전개된다. 일본군의 만행보다는 폭력적 상황에 처한 소녀들의 두려움과 공포, 그 속에서 피어난 우정에 초점을 맞춰 안타까움과 눈물을 자아낸다.

조·단역까지 약 200명의 배우와 스태프가 참여했다. 정민 역의 강하나는 재일동포 4세로 부모를 설득해 이 영화에 출연했다. 감독이 가장 먼저 캐스팅한 배우로 신녀 은경 역의 최리는 첫 작품 ‘두레소리’의 배경이 된 국악고등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한 차례 출연을 거절했던 그녀는 캐스팅을 수락하고 4년을 기다려줬다. 소녀의 부모로 나온 오지혜, 정인기, 그리고 생존 위안부 할머니 손숙까지 영화의 좋은 뜻에 기꺼이 동참했다.

영화는 무엇보다 전쟁종식과 함께 증거인멸을 위해 불태워진 소녀들의 넋을 위로하는 데 역점을 뒀다.

“소재만 들어도 눈물 난다. 너무 아픈 얘긴데 어떻게 보겠느냐. 그런 말들을 했다. 아픈 소재를 아프게만 풀면 그건 고문이다. 고통을 함께 나누면서 어떻게 예술적으로 승화시킬지가 관건이었다.”

영화의 목표는 억울한 넋들의 귀향이었다. “전통음악과 무형문화재 진도 씻김굿을 접목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했다. 그동안 위안부 피해여성은 복수화 된 개념이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개별화해 부모에게 예쁨 받던 소녀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평균 나이 16세, 신체 나이 12세, 개중에는 초경도 안 한 소녀도 있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영화에서는 태워진 소녀들이 나비가 돼 하늘을 나는 장면이 꿈결처럼 펼쳐진다. “태워지는 소녀들을 원 신 원 컷으로 찍었다. 특수효과 감독이 실제로 더미를 만들어 다 태웠다. 그때 배우들과 스태프들 모두 너무 고통스러웠다. 신기하고 가슴 아프게도 그때 나비가 날아들었는데 마치 우리를 위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감독의 염원이 담긴 상징적인 장면이기 때문일까, 조 감독은 가장 기억나는 장면으로 주인공 정민의 귀향 신을 꼽았다.

“거의 막바지에 촬영했는데 레디 해놓고 액션을 하려는데 목이 메었다. 1분 정도 말을 잇지 못하니 스태프들이 돌아봤다. 시나리오 쓸 때도 그 한 줄 쓰기가 어려웠고, 그렇게 눈물이 났다.” 귀향의 ‘귀’자가 돌아올 ‘귀(歸)’가 아닌 혼백 ‘귀(鬼)’인 이유다. 영어 타이틀은 ‘Spirit’s Homecoming’이다.

영화를 본 피해 할머니들은 계속 울었다. 그리고 조 감독의 노고를 치하했다.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그동안 할머니들이 많이 돌아가셨다. 장례식 갈 때마다 마음은 급하고 돈도, 유명세도 없는 내가 너무 초라했다. 그런 나를 지지해준 아내, 모두가 떠날 때에도 늘 곁을 지켜준 임성철 PD, 그리고 12억원을 모아준 7만 국민들, 재능기부에 가까운 노고를 해준 배우들과 스태프들, 뭐라고 감사해야할지 모르겠다. 전부 기적과 감사의 결과물이다.”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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