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다 보면

2016-02-25 (목) 07:57:18 이봉호 시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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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까지 살다 보니
지성(知性)의 웅덩이 말라붙어
선인장뿐인 사막같은 세상
나 자신도 누군지도 모르고
내 부모 내 아내 몰라보는 세상
오지 말라는 법 있나

살다 보면
백지가 암흑으로 물들고
그 어둠이 달빛을 마시고
거짓이 순수 잡아먹는
세상 끝 저 만치에
홀로 갇힌 자신이
나 아니라는 법 있나

그렇지만 살다 보면
진흙 속에서 등용(登庸)하고
청운(靑雲)의 나귀 타고
청 마루 우뚝 서서
세계문단 호령하는
시인(詩人) 되지 말란 법 있나

꿈처럼 연극처럼
뒤척이는 게 인생이지만
고개 숙여 상량(商量)하며
이렇게도 살아 보고
저렇게도 쓰다 보면
두보(杜甫) 만큼 커질 수 있을까
이백(李白) 정도 닮아갈 수 있을까.

<이봉호 시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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