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꿈

2016-01-20 (수) 07:56:31 김해종 전 연합감리교회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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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은 흑인이요 목사인 마틴 루터 킹 2세를 기념하는 국정 공휴일이었다. 미국에서 사람 취급도 못 받던 노예의 후손이 조지 워싱턴이나 링컨의 대열에서 국경일의 주인이 된 것은 그 만큼 킹 목사가 미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인물이요 온 인류를 위하여 그 공헌이 크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미국의 흑인들에게 킹 목사와 같은 지도자가 있어 인간의 존엄성을 찾고 백인과 똑같은 사회적인 지위에서 당당히 가슴을 펴고 살아 갈수 있게 되었다.
지난 주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으로서 여덟 번째 신년초 “스테이트 오브 유니언” 의회 연설이 있었다. 나는 그가 출마하면서 그의 연설 가운데 자기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어깨 위에 서있다고 말한 것을 기억했다. 킹목사가 있었기에 미국의 첫 흑인대통령이 나올 수가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 킹 목사는 ‘개혁’에 관한 관심이 많았던 사람으로 그의 본래 이름을 바꾸어 종교 개혁가 ‘마틴 루터’의 이름을 덧붙였다.
그러한 가정에서 흑인 인권 운동을 위한 지도자, 마틴 루터 킹 2세가 나온 것이다. 그가 1963년 흑인 인권을 위한 대대적인 시위 ‘워싱턴 대행진’을 주도해 전국에서 20여만 명이 워싱턴의 링컨 모뉴멘트로 모여 들었다. 킹 목사는 노예 해방자 링컨의 석상 앞에서 그 유명한 ‘나는 꿈이 있노라’ 는 설교를 외친 것이다.
“나는 꿈이 있노라. 언젠가 나의 네 어린 자식들이, 더 이상 그 피부의 색으로 판단 받지 않고 인격의 내용으로 판단 받는 나라에서 살 날이 올 것을..... 그리고 언젠가 노예의 후손들이 그 주인들의 후손과 함께 한 형제로서 밥상을 같이 할 날이 올 것을…”
그는 모든 흑인들의 롤 모델이 되었다. 우리 한국 이민들의 롤 모델은 누군가? 나는 워싱턴 DC 한국 영사관 앞에 서있는 동상, 서재필 박사를 생각해본다.
그는 일평생 조국을 잊지 않았고 망명 온 십년 후에 조국의 부름을 받았을 땐 서슴치 않고 귀국하여, 1년반이라는 기간이지만, 감리교 첫 선교사 아펜젤러 목사와 함께 배재학당에서 가르치며 젊은이들의 롤 모델이 되었다. 그는 독립문을 세우고 독립협회를 조직하고 독립신문을 창간하며 눈부신 애국활동을 벌였다.
그는 뜨거운 가슴, 애국심을 가졌던 전형적인 한국인이었으니 흑인들의 롤 모델, 마틴 루터 킹 이세 목사에 버금가는 우리 한국이민들의 좋은 롤 모델이라 생각한다.

<김해종 전 연합감리교회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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