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봄을 기다리는 마음

2016-01-18 (월) 01:16:21 김옥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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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캘리포니아는 우기를 맞아서 가뭄에 단비이긴 하지만, 연일 비가 오니까 마음도 우중충해지는데 가끔 들리는 이웃들의 소식은 더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몸이 늙어가는 것을 막을 장사는 없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사람이 심근경색을 일으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MRI를 찍지 않나, 또 한 이웃은 갑자기 피를 토해 응급실로 실려가질 않나, 또 한 친구의 남편은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해 집안 여기저기에 실례를 해놓는 것이 예사이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짠해지지만 도와줄 수 없는 내 자신이 짜증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다 죽는 것이 잘 죽는 것이냐 라는 물음에 직면한다. 물론 자연적으로 병이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젊었을 때 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얼마나 잘 관리했느냐에 따라 늙어서 그 평가가 나온다.

남보다 오래 산다고 축복은 아니다. 삶의 질이 문제다. 죽을 때까지 자신의 몸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고, 걷고 밥해 먹고,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운전하면서 산다면 그보다 더 축복은 없다.


우리가 살면서 걸리지 말아야 할 병이 두가지 있다면 그 하나는 치매요, 또 하나는 중풍이다. 치매가 영혼을 잃어버리는 병이라고 한다면 중풍은 완전히 자신의 몸을 남에게 의지하면서 살아야 하는 병이다. 내가 아침마다 기도하는 제목의 하나는 죽을 때까지 품위를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인간이 품위를 잃는 것보다 더 치욕적인 것은 없다. 사람들이 고문을 당할 때 발가벗기고 때리는 이유는 그보다 더한 치욕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얼마 전 어떤 TV 프로그램을 보았는데 그 강사는 이왕이면 흥을 가지고 살자고 강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흥부전에 나오는 흥부는 가장 흥을 가지고 산 사람이라는 것이다. 흥부는 지금 시대에선 가장 못난 남편이요 실패한 인간이다. 그러나 늘 낙천적으로 살아서 궁극엔 돈벼락을 맞는다.

결국 인생을 잘 사는 방법은 지식이 많은 것만도 아니요 여러가지 좋아할 수 있는 것을 갖는 것, 그보다 더 잘사는 것은 마음의 기쁨을 가지고 어떤 일에 빠질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에 온통 마음을 빼앗길 때보다 행복한 것은 없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살을 깎는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일을 해나갈 수가 있는 힘이 생기나보다.

우기 중에도 짬짬이 해가 날 때 나는 산책을 나선다. 등에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걷는 것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은 없다. 사실 안개가 자욱한 것도 분위기가 있고 멋이 있다.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우수가 몰려오기 때문이다.

길가에 서 있는 나무들이 잎새들을 떨구고 나목이 되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느새 가지 끝에 새순을 달고 있다. 그들은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한달만 기다리면 하얀 배꽃을 선두로 해서 분홍색 벚꽃과 노오란 개나리꽃이며 눈부신 자목련도 기지개를 펴며 찬란한 자태를 뽐낼 것이다.

우리들은 모두 봄을 기다리고 있다. 아픔도, 시간도, 고통도 지나가고 봄이 되면 내 이웃들이 모두 다시 건강을 찾았으면 한다. 우리 모두는 지금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김옥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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