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춘원 이광수, 화해와 용서

2015-11-18 (수) 08:5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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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묵 전 워싱턴 문인회장

사람들은 베토벤을 악성(樂聖)이라 부른다. 음악이라는 악 자에 성인이라는 성자이다. 의미인즉 음악 세계에서 성인이라는 뜻일 것이다. 시의 세계에서는 인도의 타고르를 시성이라고 부른다. 중국 사람들은 두보를 시성, 그리고 이태백을 시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을 쓰는 작가에게는 문성이나 소설성 이나 하는 식으로 성 자를 붙이지 않는다. 대문호라고들 한다. 아마도 소설은 그리 고귀한 사람보다는 우리에게 값진 그 무엇을 전달하는 사람에게 가치를 두어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 누가 대문호라는 호칭을 듣고 있는가? 가장 많이 회자되는 작가는 전쟁과 평화의 톨스토이, 장발장의 빅토르 위고, 그리고 햄릿의 세익스피어 아닐까.
중고교 시절 나를 매료시켰던 죄와 벌, 카라마죠프 형제의 작가 토스도예프스키, 부자(아버지와 아들)를 쓴 뚜르게네프는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고는 하지만 대문호라는 말은 듣지 못한다. 다시 말하자면 불후의 작품을 남겼다고 해서 대문호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 대문호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은 어떤 부류의 작가들일까? 구태여 구분하자면 불후의 작가들은 격랑의 물, 폭포의 물로 생각하며, 대문호는 모든 것을 다 안고 도도히 흐르는 강물로 생각한다. 톨스토이, 세익스피어, 위고가 그런 분류의 작가일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한국에도 대문호라고 불릴 작가가 있는가? 나는 한 분을 뽑으라면 사실 나뿐만이 아니라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춘원 이광수를 뽑을 것 같다. 그의 작품이 다소 종교적 특히 불교에 치우친 감이 있기는 하지만 조선의 개화기에 그 분만큼 여러 분야를 소재로 하여 폭 넓고, 선각자적 지식 전달자이면서 동시에 문학적으로도 훌륭한 작품을 남긴 분은 없다. 모든 것을 안고 도도히 흐르는 강물 같았다는 말이다. 사실 한국의 문학의 역사를 시작하는 개화기에 한국이 춘원 이광수를 가졌다는 사실은 우리 세대의 아버지, 어머니 세대뿐 아니라 우리 세대에도 행운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지금도 친일파라는 멍에를 안고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있다. 사실 비극적이지만 한국의 문학사에서 춘원 이광수 뿐만이 아니라 그 누구도 대문호라는 이름을 얻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이것이 우리 모두 한국인들의 사고에 생태적인 비극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서로 상대방을 적으로 생각하는 비애 말이다. 항일이냐, 민족 개조가 먼저이냐로부터 춘원은 처음부터 서로 물어뜯는 대상이 되어, 전 국민이 동의할 수 없게 되었고, 그는 문학과는 거리가 먼 정치적 눈길로 재단되어 대문호라는 칭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사실 춘원은 일본 식민지 시대 초기 조선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후일 친일로 돌아섰지만 그가 기쁘게 친일을 했다고 나는 생각지 않는다. 그는 상해에서 돌아와 민족의 계몽운동을 펼첬다. 문학이라는 도구로 말이다. 그 시대 최남선과 이광수는 문학의 세계가 아니라 한국민의 자아인식을 이끈 두 큰 인물이었다.
이제 한국은 대한민국 건국일도 가져야겠고, 초대 대통령도 가져야겠다. 그 첫 발을 문인들이 시작해야 한다. 바로 그 첫 걸음이 춘원 이광수를 춘원 이광수로 받아들이고 역사 위로 올려놓은 일이다. 진정한 민족주의란 화해와 용서이다. 나는 그렇게 민족주의를 정의한다.
오는 21일 저녁 춘원의 따님인 이정화 여사가 이곳 워싱턴에 와서 “춘원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감사를, 춘원을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용서를” 이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춘원이 납북된 1950년 이정화 여사는 감수성이 많은 여고생이었다. 우리는 따님을 통해서 춘원의 생생한 모습을 보고 또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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