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정훈기자의 앵콜클래식]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

2015-11-12 (목) 04:15:43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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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기자의 앵콜클래식]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
발라드 하면 쇼팽의 발라드 1번이 떠오른다.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나오는 곡으로, 쇼팽의 곡중에서도 가장 젊은 기상이 넘치는, 기교적인 아름다움과 서정미를 고루 갖춘 명곡으로 꼽히는 곡이다.

발라드란 ‘스토리를 가진 노래’란 뜻이며 이야기 형태의 시,악곡에 쓰였던 형식을 말한다. 음악에서는특히 쇼팽이 4곡의 발라드로서 그 이름을 높인 바 있고 근래들어서는 주로 감상적인 가사에 가락을 붙인, 대중음악의 한 부류로서큰 유행을 탄 바 있다. 가요풍을 비롯 한국인들이 기억하는 발라드 음악들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피아노 곡 ‘아드리안느를 위한 발라드’를 뻬놓고 발라드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딘가 도시인들의 서정을 노래하고있다고나할까, 특히 70년도 말 폭발적인 인기속에 제 2의 ‘소녀의 기도’라고 불리우며세미 클래식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널리 사랑받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태어나서 살다보면 누구나 빨리영악해진다. 그것은 바쁜 환경 속에서 많은것을 보게 되고, 대중 속의 고독이 그만큼 빨리 찾아오기 때문이다. 도시인들이 늘 우울한 것은 이 때문인지 모르지만 피아노곡‘아드리안느를 위한 발라드’가 발표됐을 때 도시인들은 폭발적인 애정에 빠져들었다. 이 음악이 주는 감상이 어딘가 미아가 됐다는 느낌?… 도시인들의 고독을 너무도 아름답게수놓고 있기 때문이다.

폴 드 세느비유가 작곡, 리처드 클레이더만이 연주했던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는 한때 대유행을 타며 많은 사람들의 귀를 현혹시켰던 작품이다. 폴 드 세느비유가 두번째딸이 태어난 것을 기념하여 딸에게 헌정했는데, 리처드 클레이더만이 연주했던 데뷰앨범은 무려 2천2백만장이나 팔려나갔다고한다.

항간에서는 한쪽 팔 다리를 잃은 장애인이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간 뒤 눈물 속에 작곡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지만 (프랑스의지휘자 앙드레 리우가 지어낸 이야기) 믿거나말거나,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그 이야기를 진실로 믿으며 발라드가 흐를 때마다 그아름다운 이야기를 떠올리곤 한다고 한다.

‘A 발라드’가 유행하던 그 시절, 살던 동네의 언덕에는 뾰죽탑 교회가 있었다. 큰 교회는 아니지만 담장 아래로 넓은 포도밭이 있었고 뒤쪽으로는 산너머 산이라고 부르던 관악산 줄기가 위치하고 있었다. 가을이 되면제법 많은 낙엽이 떨어져 시적인 분위기를연출하곤했는데, 골짜기를 산책하며 ‘전원교향곡’을 흥얼거리곤 했었다. 교회당에서 약5백보 가량 떨어진 곳에 집이 있었기에 친구와 학생회 애들이 찾아와 진을 치고 놀다가곤 했다.

친구와의 대화는 대체로 유행하던 음악,산다는 잡다한 모습들… 불안한 정치, 현실에 대한 푸념 등이었는데 그당시 친구가 좋아했던 곡이 바로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였다.

친구는 팝송 등을 들으며 산다는 모순을 잊고 싶어했고, 나는 음악을 통해 산다는모순을 이해하고 싶어했다.

우린 서로 달랐지만, 서로를 좋아했고 서로에게서 자신들에게는 없는 부분을 배워나갔다. 그당시 우리가 무언가를 추구하고, 사랑했다면 (그것은神조차도)그것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니라 무언가를 추구하고 사랑할 수 있는 절대가 없었다면 견디기 힘들만큼 (젊음이란) 현실이그만큼 무거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좁고… 우리에게 쏟아지던 빛은 비록 실낱같이 작았지만… 젊음 때문에,우리는 그 속에서 순수를 찾고 비애를 초연히 삭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찬바람 속에 여드름을 돋아내며서로를 뜯고 할키며 설익은 애정조차 거꾸로된 질투심으로 불태우기도 했지만 이유 없이 좋기만하고, 마음의 상처조차도 낭만적이었던 그 시절… 아니, 우리는 젊었기 때문에오히려 더 많이 방황하고 더 많이 괴로워 했는지도 모른다.

큰 함박눈이 내리던 날이면…한 없이 거리를 걷게 했던 하나의 환영과그(녀의) 눈동자… 비록 눈처럼 흔적도 없이녹아버릴 풋사랑의 한 때였지만, 그당시 울려오던 아름다운 발라드와 함께 지금도 그때 그 모습이 함박눈이 되어 가슴 속에 남아있곤하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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