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빨간 신발 두 켤레

2015-11-04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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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병은 / 스털링, VA

오랫만에 열렸던 남북이산가족 상봉에 남측에 98살이나 되시는 구상연 씨가 북한에 두고온 두 딸에게 빨간 신발 한 켤레 씩 가져가서 주는 걸 듣는 우리 모두를 눈물 젖게 했다. 나도 일곱살이었을때 경북 봉화에서 안동 쪽으로 피란을 가는데 신발이 다돼 아버님께서 아침에 장에 가셔서 우리 가족들을 위해서 여러가지 물건과 여러 컬레의 신발을 사서 한낮에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곳에 오셨다. 모두가 신발이 발에 맞았는데 나의 왼쪽 신발은 발에 맞지만 오른쪽 신발은 발에 맞지 않는 짝짝이를 사 오셨다. 맞는 게 없어 그렇게 사오셨다고 하셨다.
적지 않은 논과 과수원을 하셨던 아버님은 피난 가는 와중에도 돈은 있는데 필요하고 원하는 물건을 못샀다. 비록 오른발보다 작은 신발이었지만 신고 걷다 보면 괜찮아 질거라 생각하고 걸었는데 걸으면 걸을수록 발이 아파 3일째엔 신발 뒤꿈치를 가위로 잘라 내고 슬리퍼처럼 질질 끌고 걸었다.
지난달 공산치하에 있었던 동유럽을 여행하면서 한인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북한은 외화벌이용으로 여러나라에 식당이 있다고 신문에서 읽은게 있어 “여기에 북한식당은 없읍니까?"고 물으니 손님이 가질 않아서 다 없어졌다고 했다. 선물가게에 들어가 보면 좋은 물건도 많고 점원들도 상냥하고 친절하고 사람들도 자유로워 활달한 걸 보니 자유세계로 편입되고 25년이 지난 지금 금강산 상봉장에 나온 북한사람들처럼 똑같은 옷을 입지 않았다.
독일은 난민에게 후한데 난민에게 강경한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관광지로 향해서 길을 걷고 있는 우리 앞에 우리쪽으로 오는 세사람 얼굴이 오스트리아 사람이 아닌데다 구호 받은 듯한 똑같은 검은 옷이 입은지 오래 돼 초라하고 얼굴마저 초췌하고 아빠, 삼촌으로 보이는 어른들은 우리에게 시선을 두지 않고 앞에서 걷는 열살쯤으로 보이는 아이는 우리를 보다가 뒤돌아 어른들을 쳐다 보고는 다시 우리를 보는 눈이 겁에 질린듯이 보여 난민이란 걸 알아 차리고 “저 사람들 난민인것 같습니다"고 같이 걷는 선배에게 말씀 드리니 “난민인줄 어떻게 알아?" 하시기에 “보면 알아요"했다.
자기나라에 있었으면 사악한 무리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고 정의의 폭격에 운 나쁘게 맞아 죽을수 있어서 살아 보겠다고 바다를 건너다가 많은 사람이 익사하고, 세살 어린이가 죽어서 물가에 떠밀려 와 전세계를 울게했던 지중해를 건너 난민의 길을 걷고 있는 그들은 살아 있는 것 처럼 보이지 않았다.
“신발을 사주마"고 약속을 받았던 여섯살 송옥이는 일흔 한 살이 됐고 세살이었던 선옥이는 예순 여덟이 되어 약속했던 아버지로 부터 65년만에 신발을 받았고 짝짝이 신발을 한쪽은 신고, 다른쪽은 끌고 피란가던 일곱살 머시마는 일흔두살 할아버지가 돼 세계여행을 즐기다가 처참한 난민을 봤다.
지구상에 전쟁이 없기를 빨간 신발 두컬레를 65년만에 아버지로부터 받는 두딸을 보고 또 이국땅 먼길을 걷는 초췌한 난민을 보고 간절히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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