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배고픈 것과 배 아픈 것 (나운택 / 자유기고가)

2015-09-26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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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옛말이 있다. 인간심리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비열성을 정확하게 꿰뚫어 본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담은 말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출세를 하거나 부자가 되었을 때는 그런가 보다 하다가도 가까운 이웃이나 친지가 성공하고 출세를 하면, 왠지 속마음이 편치가 않은 게 우리 보통사람들의 심리다.

왜 그럴까?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가까운 사람이 돈을 모아서 논을 샀다면, 당연히 기뻐하고 축하해 줘야 할 일이 아닌가? 그런데, 왜 배가 아플까? 거의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시기와 질투심에서 나오는 반응, 그에 따라 느끼게 되는 ‘상대적 박탈감’ 때문일 것이다.

몇 해 전 미국 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불황의 늪으로 몰아넣었을 때 미국인들이 금융가 경영자들의 엄청난 보수에 분개하여 “월가를 점령하라!”는 대대적 시위를 벌인 일이나 한국에서 연봉 5억원 이상인 등기임원들의 연봉 공개를 법제화한 일도 따지고 보면 빈부 격차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에서 나온 행동들이다.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원시 공산사회에서는 사유재산 개념이 없어서 너나 나나 가진 게 없으니까 평등했지만, 사유의 개념이 생기면서 불평등이 생겼고 그에 따라 불행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농업생산성이 높아짐에 따라 지배자와 피지배자, 부자와 빈자간의 불평등이 급속도로 심화되었다고 했다.

그의 이런 사상적 배경에서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도 나왔고, 결국 루소의 이런 사상은 후에 마르크시즘 탄생과 공산주의 혁명의 배경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원시 공산사회와 같은 형태의 ‘사유재산 없는 평등한 사회’는 환상에 불과하며, 정치 사회제도에 의한 강제적 평등의 실현은 극히 비효율적인 것이어서 결코 평등하고 행복한 사회를 이룰 수 없다는 점이 명백하게 밝혀졌다.

이런 부의 불평등 해결 방법으로 ‘부자로부터 더 걷어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기’식의 소득 재분배정책을 시행하지만, 그 효과는 오히려 엉뚱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1990년 미국에서 보트, 비행기, 보석 등 사치품에 대한 소비세를 대폭 인상한 일이 있는데, 결과적으로 이 정책으로 경기만 침체되고 가난한 자들은 일자리만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프랑스에서는 좌파 올랑드 정부가 들어선 후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율을 70%까지 올렸다. 그러자 부유층이 속속 프랑스를 떠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포함한 각국의 좌파 정치인들은 아직도 이런 류의 정책으로 국민들을 현혹시키고 있고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과 같은 책이 인기를 끄는 게 현실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지나친 탐욕을 통제하고, 못 가진 자들을 위해 소득을 적절히 재분배하는 정책은 꼭 필요하지만, 법이 정한 테두리 내에서 정당하게 번 돈에 대한 소득세나 상속세를 70-80%씩 과도하게 부과하고, 고소득자의 소득을 까발리는 식의 ‘시기와 질투’를 법제화하는 정책이 과연 바람직하고 정의로운 정책인지는 의문이다. 이런 정책들은 정의롭지도 않을 뿐 아니라 ‘부의 재분배’라고 하는 원래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파하는 대신 “네가 논을 샀다고? 좋아. 나라고 못 살 거 없지.”하면서 분발하는 긍정적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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