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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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즐길 수 있는 조용한 비치

2015-09-2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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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부의 숨은 해변]

영화로 만들어진 소설 ‘별들의 고향’은 주인공 경아의 비극으로 끝났지만 캘리포니아 말리부는 어제도 오늘도 진정한 ‘별들의 동네’다.

한없이 이어지는 비치와 1번 퍼시픽 하이웨이 건너 펼쳐진 구릉이 멋들어지게 어우러진 말리부. 그곳에는 지금도 별들이 숨 쉬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사는 사람은 누구나 말리부에서 안식을 찾을 수 있다. 조용하고 평안하게 스타의 품격을 누릴 수 있는 숨은 바다가 있다. 돈이 많든 적든, 유명하든 않든, 오붓하고 호젓하게 태평양을 맘껏 즐길 수 있는 곳, 바로 웨스트워드 스테이트비치(Westward State Beach)다.

관광객이 몰려드는 샌타모니카를 벗어나 1번 하이웨이를 타고 북쪽으로 달리면 은빛 모래사장이 이어진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백사장이 보이지 않고 어느덧 바닷가 고급 주택들이 바다를 가리기 시작한다. 말리부에 들어선 것이다.

시야에서 사라진 바다는 이들 저택의 아래에서 출렁거리고 있다. 그들만의 바다인 셈이다. 그러나 프라이빗 비치는 계속 쪼그라들며 속속 시민들에게 문이 열리고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해변을 접하는 방문자들은 새삼 이제껏 금지됐던 절경에 감탄하게 된다.

말리부는 원래 아메리카 인디언 추마시족의 땅이었다. 이들은 이 지역을 ‘말리워’라고 불렀다. ‘파도 소리가 크다’는 뜻이다. 말리부라는 이름의 유래다. 파도가 높아 서핑의 천국으로 손꼽히는 이 곳의 바다는 그때도 웅장하게 원주민들의 귀를 가득 채웠다.

말리부는 대표적인 부촌 가운데 한 곳이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비치도 이곳에 있다. 카본비치(Carbon Beach)는 해변과 붙어 있는 부동산 평균가격이 세계 1위의 해변 주택가로 올라 있다.

스타들의 저택이 몰려 있는 말리부에 사는 저명인사들은 정말 많다. 제임스 캐머론 감독,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안젤리나 졸리, 할리 베리, 에밀리 블런트, 피어스 브로스넌, 리처드 기어, 멜 깁슨, 탐 행크스, 에디 머피, 브래드 피트, 션 펜, 로버트 레드포드, 모델 신디 크로포드, 가수 밥 딜런, 레이디 가가, 재닛 잭슨, 핑크 등등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1번 하이웨이에서 보이는 비치들은 온통 서핑보드와 비치발리볼로 덮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 해변 저택과 맞붙은 바다는 출입로를 찾기도 쉽지않을 뿐더러 남의 집 앞을 서성거린다는 게 낯선 것도 사실이다. 이 모두를 지나쳐 버리면 곧 말리부 피어가 나온다. 말리부 피어는 무려 1,000만달러를 들여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마치고 지난 2008년 다시 개장했다.

차를 다시 달려 주마비치(Zuma Beach)가 가까워지면 좌회전할 준비를 해야 한다. 주마비치로 접어드는 삼거리 바로 직전에 왼편으로 웨스트워드 비치 로드가 나온다. 순식간에 지나치기 쉬우니 눈을 부릅떠야 한다.

도로를 따라가면 스트릿 파킹한 차들이 보이지만 끝까지 간다. 길이 끝나는 지점에 주차장이 있다. 여기에 차를 세우면 비로소 바다를 온전히 차지할 수 있다. 바로 인근의 주마비치가 사람들이 넘실대는 장터라면 웨스트워드 비치는 어린이들이 모래놀이를 하고 아기들도 파도에 발을 적실 수 있는 ‘우리만의 해변’이다.

그렇다고 작은 백사장이 결코 아니다. 주마비치에서 이어지는 해안선이 그대로 지속되고 네이비블루의 태평양과 파란 하늘이 눈앞에 넘실거린다. 바로 뒤편 절벽 위에는 저택들이 버티고 있지만 멀리 떨어져 있어 함께 말리부 바다를 공유하는데 불편이 없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담은 영화 ‘D데이, 6월6일’을 여기에서 촬영했다. 영화 팬들이야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넓고 평온한 바닷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밖에도 ‘혹성 탈출‘ ‘아이언 맨‘ ‘앤젤’ 등 여러 영화와 ‘모던패밀리‘ ‘내 사랑 지니‘ ‘스콜피온’ 등 TV 드라마의 현장이기도 하다.

비치의 끝은 거대한 암벽이 버티고 있다. 포인트듐(Point Dume) 주립자연보호구역이다. 남가주에서 알아주는 암벽등반 코스다. 파도가 바위를 쉴 새 없이 때리는 절벽 위로 청년들이 기어올랐다가 로프를 타고 내려온다. 보기 드문 진풍경이다.

하지만 숨은 절경이 또 있다. 바닷물이 들이차는 바위를 조심스레 걸어 암벽을 돌아가는 순간 꼭꼭 숨어 있던 파이어럿 코브 스테이트비치(Pirate’s Cove State Beach)가 자태를 드러낸다. 자동차로는 절대 갈 수도 없고, 절벽 사이에 웅크린 채 몇몇 사람만이 다가갈 수 있는 비경이다. 바다쪽으로만 트여 있어 존재조차 알기 힘든 시크릿 비치다.

그러나 젊은 연인들이라면 기꺼이 미끄러운 바위를 헤치고 도전할 만한 매력 덩어리다.

대도시의 삶으로 숨 막히는 로스앤젤레스 근처에서 영화에나 나올 이런 비밀스러운 해변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글·사진= 유정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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