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아픈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마음도 예외는 아니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비수처럼 마음에 꼿혀 아플 때가 있다. 때론 꼭 나를 두고 한 말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말에도 어떤 부분에 딱~ 걸려 마음이 채할 때가 있다. 처음엔 좀 괴롭고 아프더니 시간이 지나면 화가 나고 점점 우울해져 한참 마음이 휘둘린다. 잊으려 하지만 문득 정신이 들면 어느새 다시 그 생각에 빠져 있는 나를 발견할 때 상처를 준 그 사람이 더욱 미워진다. 떨쳐버리고 싶은 그 사람과 원치 않는 마음의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상담소를 찾는 내담자들 중에는 마음에 불편한 동거자 몇 명씩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상담사에게 그가 어떻게 자신을 상처주고 아프게 했는지 열심히 설명한다. 참으로 억울한 일들이 많아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더 마음 아픈 것은 그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그 미운 사람을 밤낮으로 끌어안고 사는 내담자다. 정작 상처를 준 그 사람은 두발 뻗고 잘 살고 있는데 상처를 받은 피해자만 상처를 되새김질 하며 자해하고 있으니 얼마나 억울한가? 그 미움에 잠도 방해받고 소화도 안되, 결국 속병이 나고 몸의 면역성도 떨어져 마음의 병이 몸의 병이 된다.
실제로 마음의 병이 육체에 나타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본다. 이런 저런 검사를 다 해보아도 이상은 없는데 환자는 늘 기운이 없고 소화 불량이나 편두통에 시달리며 실제 몸에 고통과 아픔을 느낀다. 이런 상태를 정신병리학에서는 ‘신체증상질병 (Somatic Symptoms Disorder)’이라 부르는데, 다양한 신체 증상은 있으나 의학적 검사에는 그런 증상을 설명할 수 있는 신체적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를 일컫는다. 성인 인구의 5-7% 수준으로 남성보다 여성이 유병률이 높은 것으로 추정한다.
사람이 몸과 마음과 영의 통합적인 유기체임을 생각할 때 이런 현상이 오히려 당연하다 본다. 그렇기에 육체의 건강을 돌보는 것만큼 마음의 건강을 돌보는 일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상처를 덜 받고, 설사 마음에 상처를 받아도 가능한 빨리 마음을 회복하고 마음이 덜 무너지는 심리적 건강함은 얻을 수 있을까?
아이러니컬하게도 아프지만 나를 찌르는 그 상처 앞에 멈춰서는 것이다. 상처를 준 사람에게 향하던 미움의 에너지를 이제는 ‘왜 그게 나를 아프게 하는지’ 찔리고 아픈 나의 상처를 바라보는 것에 쏟는 것이다. 조심스럽게 말하기는 대부분 우리의 상처는 그 사람이 줬다기 보다는 예전, 특히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과 상처가 건드려진 경우가 많다. 어린 시절 예쁜 언니나 공부 잘하던 형 때문에 받았던 부모님의 차별과 냉대와 무시, 길을 잃어 낯선 곳에서 울며 느꼈던 공포와 버려짐에 대한 두려움, 교실에서 돈이 없어졌는데 집이 어렵다는 이유로 의심받던 억울함,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포기해야했던 절망감,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에게 구타당하던 엄마를 지켜주진 못했던 무력감과 분노 등 우리 안에 이미 살고 있던 상처들을 그 사람이 건드렸다는 걸 인식하는 것이다.
“전 상처 잘 받아요”라고 말하는 이들을 가끔 만난다. 그 사람 주위에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유달리 많다기 보다는 마음 안에 보듬어 줘야할 아픈 상처가 많음을 의미한다. 소독약을 부으면 상처 난 곳만 흰 거품이 부글거리는 것과 같은 논리다. 어떤 이에겐 이 말조차 상처일 수 있겠지만, 오히려 참 희망적인 말이다. 왜냐하면 상처주는 사람들을 피하며 갖혀 사는 대신, 나를 찌르는 상처 앞에 멈춰설 때 비로소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이 내게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에게는 자식 자랑이 상처고, 다른 이에게는 큰집이나 명품 가방이 상처다. 누군가는 외모가 상처인 반면 어떤 이는 학벌이 상처다. 이처럼 각자 아픈 상처가 다르기 때문에 ‘나를’ 아프게 하는 그 것 앞에 멈춰서서 들여다볼 때 비로소 우리는 상처준 이를 미워하는 대신 스스로의 상처를 보듬는 마음의 건강함을 회복할 수 있게 되리라. counseling@fccgw.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