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주년특집]오가영 큐레이터와 함께 하는 호놀룰루미술관 한국관 나들이 (4)
2015-08-04 (화) 12:00:00
둥근 화면을 앞에 두고 장인의 손이 거침없이 움직인다. 손에 쥔 도구로 먼저 둥근 외곽선을 구획한다. 화면 아래 중앙에서 시작한 원이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시작점에서 만나지 않아도 좋다. 하얀 공간 한 가운데에 유연한 선을 그어낸다. 한 두번 그려본 솜씨가 아닌 듯 빠른 속도로 길고 짧은 선이 그려진다. 어느새 눈 앞에 살아 펄떡이는 듯한 물고기 한마리가 나타났다. 호놀룰루미술관이 소장한 <분청조화 어문 편병, Flask Bottle with Fish Design>(2522.1)이다. 둥근 항아리 모양의 병을 만들고 양 옆을 편평하게 두드려 만든 도자기 편병은 작은 주둥이와 넓은 굽을 가지고 있다. 내용물을 담아 뚜껑을 막고 장시간 보관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기종으로 음식물의 저장 및 발효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시대 초 15-16세기에 유행한 편병 중에는 분청사기 편병이 많은 수를 차지한다. 분청사기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자적인 한국의 도자기로 본래 명칭은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이다. 분청사기는 고려시대 말에 유행했던 상감 청자를 조선식으로 계승한 도자기로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약 200여년간 유행했던 도자 양식을 말한다. 고려시대 말기, 잦은 왜구의 침략과 복잡한 대외 정세로 고려 왕조는 혼란기에 빠졌고, 전라도 강진을 중심으로 질 좋은 청자를 만들던 장인들은 왜구의 노략질 등을 피해 전국 각지로 흩어져 생계를 위해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 때 만들어진 도자기는 전성기 때 비취색에 가까웠던 청자의 색에서 탁한 회청색으로 바뀌고, 정교했던 상감 문양도 과감하고 자유분방한 문양으로 바뀌었다. 고려청자와 유사한 재료 및 기법으로 그 전통을 계승했지만 표현 방식에 있어 확연히 구분되는 이러한 양식의 도자를 일컬어 분청사기라고 부른다. 좋지 않은 품질의 도자기 표면을 감추고자 백토를 발라 거친 면을 숨기는 백토 분장기법은 분청사기를 대표하는 기법이다. 특히 거친 풀비같은 도구에 백토를 듬뿍 발라 도자기의 표면을 쓱쓱 칠한 후, 날카로운 도구로 백토의 표면을 긁어내는 장식기법은 분청사기의 매력을 잘 보여준다. 배경의 부드러운 붓질 자국과 문양의 날카로운 조각이 한데 어우러지고, 백토의 흰색과 태토의 짙은 색이 대비를 이루면서 절묘한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분청사기의 매력은 빠른 속도로 막힘없이 그려나간 문양의 속도감에서 숙달된 장인의 솜씨를 느낄 때 더욱 크게 다가온다. 규범과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함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동안 몸에 익힌 기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거침없이 문양을 그려나간 장인의 작품은 오백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즐거운 감동을 안겨준다. * 이 유물은 2015년 8월 13일부터 11월 8일까지 개최하는 “Splendor and Serenity: Korean Ceramics from the Honolulu Museum of Art” 특별전에서 만나볼 수 있다.
<호놀룰루미술관 관람 정보>
Honolulu Museum of Art
900 South Beretania Street
808-532-8700
www.honolulumuseum.org
관람료
일반 10 달러
만 17세 미만 무료 입장
관람시간
화요일-토요일 10:00-16:00
일요일 13:00-17:00
* 매주 월요일 휴관
* 매주 화요일 10:00~12:00은 한국어 도슨트 투어 가능
* 무료 관람일 및 휴일 관람시간은 홈페이지 참고
<하와이 한인미술협회 후원>
오 가 영호놀룰루미술관 아시아부 한국미술 담당한국국제교류재단 파견 객원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