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어 손질
2015-07-29 (수) 12:00:00
칼을 든 여자는 무서울 것이 없냐고
아니, 무서울 것 없어 손에 칼을 든
나는 시방 위험한* 아내이다
오므렸던 허벅지도 그만 벌어져라
대가리를 살릴 것이냐 버릴 것이냐
숨통은 오래 전에 끊어졌으나
육신의 처분은 미정이다
칼을 갈며 생각하자
넙적한 접시를 엎어놓고 칼을 갈며
오로지 앞으로 벌어질, 벌릴 일들만
엉덩이가 꽉 끼는 청바지는 입지 말아야지
꼼짝없이 잡힌 줄 알고 자포자기한 눈동자를 마주하더라도
다만 어깨 죽지를 보듬어 주어야지
칼의 가장 무디어진 끝이 눈이었던지 입이었던지
턱 밑에서 항문까지 외길을 가르며 되짚어 보자
칼끝을 따라 온 부레와 난소 위 간 창자 심장 아가미 따위가
아무려면 어떨 구멍으로 샅샅이 들어간다
깊이를 고민했던 순간들은 떠올리기도 힘들겠지
마음을 담아 만들어내는 한 접시의 요리라면
먹는 사람 몸속에 오래오래 남는다는
몸의 기억력을 믿으며 칼은 기꺼이 칼자루에게 조종당한다
칼자루를 쥔 주부에게
용기란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
*김춘수의 「꽃」에서 빌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