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섭 (아동문학가/ 목사)
뉴욕 브루클린에 엄마 찾지 않는 아이가 나타나 화제가 되고 있다. 본인이 다섯 살이라고 말하고 이름은 호세라고 한다. 부모에 대하여 물어도 아무 것도 모른다. 이 소년은 잘 먹고 잘 놀고 어느 집에 가도 금세적응한다. 문제는 부모를 찾지 않는 것이다. 사람이 잘 먹고 잘 벌고 건강하다 할지라도 하나님, 구원, 영생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내가 혼자 무엇이나 잘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문제가 있다.
중미 일대에 ‘쿠아트로 오호스’라는 특이한 물고기가 산다. 그들은 눈 네 개를 가진 유일한 생선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눈은 두 개인데 눈알 하나에 렌즈가 두 개씩 붙어있다.(쿠아트로 오호스는 스페인어로 네 개의 눈이라는 뜻) 렌즈 하나는 위를 보게 되어 있고 다른 한 렌즈는 아래를 보게 되어 있다. 위 렌즈로 먹이를 찾는 동시에 아래 렌즈로는 적을 감시한다. 사람도 땅만 보고 살지 말고 절반은 하늘을 쳐다보아야 한다.
아동문학가 강소천의 동시가 있다. <물 한 모금 머금고 하늘 쳐다보고, 또 한 모금 머금고 구름 쳐다보고> 병아리가 물 마시는 모습을 신앙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물을 마시려면 아래를 내려다보아야 한다. 그러나 다음 순간 병아리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목구멍으로 물을 넘기기 위하여 고개를 쳐드는 것이지만 신앙을 가진 시인은 삶의 노력 절반은 하늘을 쳐다보는 종교적인 행위로 해석한 것이다.
지평선을 영어로 horizon이라고 하는데 그리스어의 호로스에서 나왔으며 그것은 제한(制限)을 뜻한다. 즉 볼 수 있는 한계를 제한하는 것이 지평선이다. 그런데 우주항공사들이 우주에 들어가서 발견하는 첫 번째 놀라움은 지평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주항공사들은 지평선을 두 가지로 구분하여 하나는 ‘감각적 지평선’, 다른 하나는 ‘천체적 지평선’이라고 이름 지었다. 전자는 나의 감각으로 인지(認知)할 수 있는 지평선이며, 후자는 하나님의 세계를 믿음으로서만 인지할 수 있는 ‘믿음의 지평선’이다. 이 믿음의 지평선을 영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종교이다.
베일러 대학 심리학과의 조사에 의하면 “인간의 영성(靈性) 혹은 종교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는 미국인이 44%나 된다고 한다. 이 숫자는 지난 50년 사이에 배로 상승한 것이다. 미국인의 종교에 대한 관심이 극도로 낮아진 것을 가리킨다. <교회가 청장년을 빼앗기고 있다>의 저자 데이빗 킨어맨 박사는 “미국 청장년 열 명 중 일곱은 내 생활에서 하나님이나 종교의 영향은 거의 없다”고 고백하였다는 것이다.
1903년 12월17일 라이트 형제가 시험비행에 성공하였다. 그들의 아버지 밀턴 라이트 목사가 비행기에 태워달라고 아들들에게 날마다 졸랐다. 할 수 없이 81세의 생일선물로 잠간 태워드리기로 하고 다짐을 받았다. “아버지, 공중에 올라가서 무섭다고 내려달라면 안됩니다. 비행기는 얼른 내려올 수가 없거든요.” 배행기가 840피드 상공에 떠오르자 노인은 무서워하기는커녕 두 팔을 휘두르며 소리 질렀다. “Higher! higher!”(더 높이! 더 높이!) 사람은 시야(視野)를 물질의 선에서 좀 더 높여야 한다. 그것이 영의 시야이며 종교이다.
구경꾼은 운동장 벤치에 앉아도 직접 뛰는 선수의 쾌감과 만족을 경험할 수 없다. 종교도 그런 것이다. 신앙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 관찰이나 독서로는 종교를 알 수 없다. ‘맡긴다’는 말은 참 좋은 말이다.
병든 몸을 의사에게 맡기듯 사람은 걱정과 불안과 미래를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신앙이란 맡기는 것이다. 종교는 액세서리나 피난처가 아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그와 함께 산다는 것은 엄청난 의욕, 넘치는 기쁨, 충분한 에너지를 받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