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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과감하고 섬세했더라면…

2015-07-1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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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리뷰 - ‘손님’

떠돌이 악사(樂師) 우룡(류승룡)은 아들 영남(구승현)의 폐병을 고치기 위해 서울로 향하던 중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어느 마을에 들른다. 우룡도 영남도 긴 여정에 지친 상태, 묘한 분위기의 마을이지만 부자(父子)는 이곳에 잠시 머무르려 한다. 촌장(이성민)의 도움으로 잠시 쉬어갈 수 있게 된 우룡은 이 마을이 한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바로 쥐. 마을 사람들은 들끓는 쥐 때문에 고통을 겪어왔고, 촌장은 우룡에게 쥐를 내쫓아주면 소 한 마리 값의 돈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영화 ‘손님’(감독 김광태)은 다양한 설정이 ‘조합’된 작품이다. ‘손 없는 날’이라는 토속 민간 신앙과 서양 전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폐쇄된 소집단의 비밀과 그 구성원들의 광기, 그리고 부성애가 그것이다. 네 가지 콘셉트를 하나씩 들여다보면 익숙하지만, 동·서양의 전설과 다양한 영화에서 변주됐던 소재, 그리고 인간의 보편적 감성이 한 편의 영화에 담겨 있다는 점에서 ‘손님’은 특별하고 흥미로운 영화가 될 수 있는 자격은 이미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건 구슬을 꿰는 방법일 터. 이 영화의 성패는 이 네 가지 이야기를 하나로 묶을 기술과 아름다운 어떤 것으로 상승시킬 표현 방식에 달린 셈이다. 하지만 ‘손님’은 두 가지 모두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한다. 이야기들은 그럴싸하게 보이기 위해 포장한 티가 나고, 감정 표현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자칫 ‘손님’은 류승룡과 쥐떼가 나오는 영화에 그치고 말 것처럼 보인다.

‘손님’의 핵심은 역시 ‘피리 부는 사나이’다. 김광태 감독은 ‘피리 부는 사나이’의 이야기(마을에서 쥐를 쫓아줬지만, 보상을 받지 못한 사나이는 피리를 불어 아이들을 마을 밖으로 데려가 버린다) 자체를 비틀 생각은 없어 보인다. 김 감독의 목표는 이 전설을 한국의 시대적 배경과 풍경에 녹이고, 돈을 받아내려는 인물과 돈을 주지 않으려는 인물에게 그들의 거래에 합당한 이유를 부여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요컨대 ‘손님’의 서사적 목표는 창작이 아닌 변주다. 물론 이 보수적인 방식이 잘못됐다고 볼 수는 없다.

시작부터 평범한 길을 택했기 때문에 남는 건 역시 캐릭터와 캐릭터, 사건과 사건 사이를 관통하는 감정 혹은 정서다. 하지만 ‘손님’은 감정을 제시만 할 뿐 그 감정이 어디서 어떻게 와서 어떤 식으로 폭발하고, 사그라드는지에 관해서는 공을 들이지 않는다.

과거 마을에서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제시되지만, 촌장이 그것을 그토록 숨기고 마을 사람을 통제해야 하는 이유는 불투명하다. 촌장과 마을 주민들이 우룡에게 가하는 린치는 두려움과 광기로 제시되지만, 그들이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우룡을 비롯한 몇몇 인물도 결정적인 순간에 과잉 감정을 드러내 관객을 의아하게 만든다. ‘손님’은 차분하게 감정을 쌓아 올리기보다 네 가지 이야기(앞서 언급한)를 기술적으로 뒤섞는 데 치중한다. 그러다 보니 감정은 감정대로 겉돌고 서사도 헐거워졌다. ‘손님’에는 사건만 있고 인물이 없다.

몇몇 에피소드는 분위기가 매우 상이해 마치 다른 영화를 얽어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확 꽂히는 느낌이 없는 우룡의 피리 소리가 관객의 감정을 얼마나 건드릴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과거사를 보여주는 플래시백은 한창 극의 긴장감이 고조되는 순간에 뜬금 없이 등장하는 등 흐름상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류승룡과 이성민은 걸출한 배우들이지만, ‘손님’에서는 인상적이지 않다.

‘손님’은 차라리 기괴한 영화가 됐어야 했다. 김광태 감독도 이물감이 드는 요소들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공포를 염두에 두고 갖가지 재료들을 한 영화 속으로 끌어들였을 것이다. ‘손님’은 언뜻 창의적으로 보이지만 도전정신이 부족해 보인다. 더 과감하고, 더 섬세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손정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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