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복덩어리 `차복이’

2015-07-04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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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경(강사/ 에디슨)

`차복이’는 올해로 만 11살이 되었다. 정식으로 우리 가족이 된 지는 만 5년하고 2개월이 되었지만 백년해로라도 한 것처럼 정이 들고 가족의 일원으로서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직장에서부터 아이의 학교, 병원, 샤핑에 이르기까지 차복이는 우리와 안 가는 곳이 없다.

급하면 급한 대로, 혹은 여유 있게 일 년 내내 어떠한 극한 날씨에도 불평 한마디 없이 우리 가족의 그림자가 되어주고 있다. 심지어 커다란 첼로 케이스가 뒷자리에 꽉 차 옆구리를 찔러대도 아프다는 소리 없이 묵묵하게 목적지까지 실어다 준다.
차복이는 우리 가족에게 온 세 번째 자동차다. 5년 전 미국으로 와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입양한 혼다 시빅 중고차다. 혹시 레몬차를 속아서 사는 건 아닌지 내심 걱정도 했지만 지난 5년 동안 굴러들어온 복덩이처럼 하루하루를 너무나도 감사하게 해 주는 차다.


우리가족의 첫 번째 차는 사촌에게서 물려받은 차돌이었다. 빨간색 프라이드였는데 남편이 시동을 걸라치면 시커먼 매연을 뿜어내 온 동네에 민폐를 끼쳤던 차다.

하지만 차돌이는 내가 만삭이 되어 병원으로 급하게 날아가야 할 때도, 또 갓난쟁이 아이를 포대기에 안고 집으로 올 때도 안전하게 우리 가족을 데려다 준 고마운 차다. 그러다 아이가 3개월이 되었을 때 지구를 위해서, 아이를 위해서, 실제로는 이웃들의 눈총을 면하기 위해 차를 바꾸기로 했고 차순이가 새 가족이 되었다.

차순이는 아반테로 우리 아이처럼 신생아였다. 첫 딸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에 붙인 이름처럼 차순이는 우리 아이가 뒤집기도 못하고 버둥대던 때부터 10대 소년이 될 때까지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 준 누나 같은 차였다.

15년 동안 우리와 희로애락을 함께하다 더 이상 기력이 안 되어 떠나보낼 수밖에 없던 날, 나는 사랑하는 가족을 보내는 것 같아 대리점 마당에서 한참을 울었다. 소나기도 내리는데 다소 청승맞게. 장례식장의 주검 앞에서 흘렸던 눈물, 친구와의 헤어짐 앞에서 흘렸던 눈물과 너무나도 닮은꼴이었다.

영화 <트랜스포머>에 등장하는 오토봇도 아닌 단순한 기계의 집합체에 대한 과도한 집착일 수도, 감정의 허영일 지도 모르지만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 둘씩 사진 속이나 기억 속에 남아가면서 생겨난 낯설어지고 잊혀지는 것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 때문이었나 보다.

차복이는 여전히 집 앞 느티나무 가로수 그늘에 빗겨서 서 있다. ‘언젠가는 저 기다림을 그리워하게 되겠지.’ 현관을 나서는 발걸음이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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