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 곁에 있어주세요

2015-06-17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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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유림 사회복지학 박사 비엔나, VA

의지하던 부모를 잃고, 사랑하던 배우자를 잃고, 삶의 희망이던 자녀를 잃고, 오랜 우정을 나누던 친구를 잃고 며칠이고 눈물만 흘리던 날들. 한 번만 더 그 손을 잡고 싶고 그 목소리를 듣고 싶어 명치가 아프도록 그리움을 느끼던 날들. 나에겐 이리도 큰 슬픔이 있는데 아무일 없다는 듯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세상에 홀로 서 있는 듯한 외로움을 마주하던 날들. 그런 날들이 우리 모두에게 있었다. 우리가 걸었던 그 날들을 지금 이 순간 걷고 있는 누군가가 당신 곁에 있다면 그들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슬픔(grief)은 누군가의 죽음 이후 느껴지는 주관적인 감정을 뜻한다. 애도(mourning)는 그 슬픔을 겪어가고 해소해가는 과정을 뜻한다. 사별 경험 이후 슬픔과 애도에 대해 연구한 이들은 애도과정을 겪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며,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가진 후에야 슬픔에서 회복되고 사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공통적으로 강조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누군가의 애도과정을 도울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 곁에 있어주는 것이다. 그 곁에 머물면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 문제의 해결방법을 제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그 사람의 슬픔을 덜어주기 위해 무언가를 애써서 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함께하는 그 순간’이 필요한 것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유의해야 할 점들도 있다. “나는 네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라는 말은 삼가라. 당신이 그 사람과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해도 당신과 그 사람이 똑같은 감정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 간의 관계는 모두 독특하기 때문이다. 그저 당신이 유사한 일을 겪으면서 느꼈던 것을 이야기 해주기만 하면 된다. 어린 자녀를 잃은 부부에게 “두 사람 아직 젊으니까 또 다른 아이를 낳을 수도 있잖아. 기운내"라는 식의 말을 해서는 안된다. 물론 그 부부는 앞으로 다른 아이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부부가 슬퍼하고 그리워하는 대상은 앞으로 태어날 다른 아이가 아니다. 더 이상은 품에 안을 수 없는 그 아이가 이 부부의 애도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애도과정에 있는 사람을 고치려고 하지도 말라. 애도를 위한 정해진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신앙이 있는 사람이 천국에 소망을 두고 힘을 내야지. 이제 그만 슬퍼하고 힘 내." “하나님이 가장 선한 것을 주시니 이 일을 받아들이자" 등의 말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이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기준을 들이대며 그들을 고치려 하는 가장 대표적인 말들이다. 죽은 사람과 관련된 기념일을 기억하고 함께 추모할 수 있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기일, 크리스마스 등 특별한 날이 되면 죽은 사람을 더 떠올리게 되는 법이다. 이때 애도하는 사람과 함께 죽은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던가, 가족들이 모여 그 사람에 대한 추억들을 한 가지씩 이야기하면서 그것을 종이에 적어 유리병에 넣는다든가 등의 의식을 행하는 것을 제안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사별을 경험한 아이들의 경우, 아이들의 자기중심성 때문에 누군가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을 인지하라. 누군가의 죽음이 아이들의 탓이 아님을 알려주고, 슬프고 힘들 때는 울어도 되고, 강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려주라. 비슷한 경험을 한 아이들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도록 하거나, 죽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관련 책이나 영화를 보여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애도가 인생의 가장 위대한 스승이라는 말이 있다. 시간이 지난다고 죽음과 관련된 애도과정이 자연스럽게 다 마쳐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도하고 있는 그 사람 곁에 진심을 다해 머물러주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자.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힘들어한 후 긴 호흡을 가다듬고 인생의 길을 다시 걸어갈 수 있도록 그 곁에 있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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