탓할 일도 아니지만, 우리들은 자고나면 주위에서 너무나도 흔히 행복론을 접하게 된다. 어떻게 해야 행복해집니까? 모두들 그런대로 옳은 대답들을 제시한다.
결론부터 얘기한다면 그 으뜸은 힘들어 하는 이들, 남몰래 눈물 흘리는 이들,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나 말 못하는 이들, 실질적으로 도와줄 수 있으면 좋고, 아니면 나 자신도 힘이 부친 경우, 그들을 이해해주며 함께 손잡고 눈물 흘릴 수 있는 삶이다. 그것이 나 자신만을 위해 얄밉도록 경력 쌓고, 부를 축적하고, 도망가는 명예를 어떻게 해서든지 악착같이 쫒아가 움켜쥐고, 한번 쥐면 지남철처럼 놓지 않으려하는 나 자신만의 행복만 추구하려는 것보다 훨씬 더 값진 고귀한 삶, 행복한 삶일 것이다.
가치와 목표를 과연 어디에 두는 가에 따라 자신의 삶이 만족할 만한 삶이 되어지는가, 아니면 끊임없이 성취하고, 쫒아가도 자신으로부터 한없이 멀어져만 가는 불만족, 불행의 삶이 결정되어지는 것 같다.
제대로 된 성직자들의 삶이 전자에 속할 것이나, 행복해짐은 그분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우리들 보통인들도 그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그와 비슷해지도록 노력한다면 참 행복의 시원함을 맛볼 것이나, 풍요속의 빈곤이랄까, 상대적 빈곤층은 절대적 빈곤(실제 가난한 이들)층보다 더 비참해하고 불행해지는 경우는 후자에 속할 것이다.
결국 행복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또 누가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고 오직 내 자신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벌써 성큼 행복의 울타리엔 도달해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 유명한 하와이의 데미안(Father Damien)성자, Cope(Mother Marianne Cope) 성녀(두분 성인들은 오랜 동안 하와이의 나병환자들을 돌보다 자신들도 나병에 걸려 돌아가심)뿐만 아니라 수녀가 갓 되어 어린나이에 한국의 소록도 나환자촌에 와서 일생을 봉사하시다가 늙어 오히려 남의 신세를 져야할 때가 다가오자, 환송식도 폐를 끼칠 걸로 생각한 나머지 새벽녘에 아무도 모르게 자신들의 고국으로 되돌아가신 두 분 수녀님들을 생각하면 정말 소름끼치도록 숙연해지질 수밖에 없다.
자선은 사실 물질적으로만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이 아픈 이들을, 그들 편에 서서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하고, 함께 그 아픔을 나누려함도 중요한 자선이고, 종교의 존재 의미도 후자 쪽에서 더 찾아봐야 할 것이다. 우리말에 등도 함께 대면 더욱 따스하게 느껴지며, 기쁨도 함께 하면 두배로 증가하며, 슬픔은 함께 나누면 반으로 줄어든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이 모든 깊이 있는 생각과 아름다운 행위가 참 행복에 이르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