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감사합니다
2015-05-10 (일) 12:00:00
40년 전 다섯살 아들, 세살된 어린 딸을 데리고 브라질에 이민 가서 미싱 두대로 아내와 나는 새벽 다섯시부터 일을 시작해서 뜨거운 밥을 먹으면 시간 더 걸린다고 어느정도 식은 뒤에 먹으며 시간을 절약해서 밤 열두시에 마치고 벽에 세워 둔 침대를 눕혀 잠을 자며 힘든 이민생활을 했다.
이날도 평시와 같이 일을 하는데 미싱을 마주 놓고 일을 하는 아내는 "옛날에 패랭이 강뚝에/ 병은이와 앉아서 놀던곳/한강물 푸르게 선하다/병은아 희미한 옛생각/지금 우리는 미싱 밟고/병은의 머리 백발다 되었다/엣날에 노래를 부르자/병은아 ---."너무 힘든 이민생활이 오롯이 베인 듯 붉게 달은 얼굴에 처연한 목소리로 "메기의 노래"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처연한 메들리에 힘든 이민생활을 함께 하는 내 마음 깊숙한 곳 심금이 울려젔다.
패랭이는 교회에서 어머니주일에 학생들이 감사하다고 어르신들에게 달아 드리는 카네이션의 원종이다. 아내와 나는 결혼하기전 한강뚝에 앉아 유유히 흐르는 물을 바라 보며 지천에 예쁘게 핀 패랭이를 꺾어 이야기하며 속삭였다. 고국을 떠나 낯선 나라에서 생존을 위해서 어렵고 힘든 생활을 날마다 반복하니 옛날 한강뚝에서 미래를 꿈꾸며 속삭이던 그 좋은때가 아련히 찾아왔나 보다.
이걸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에게 편지로 알려 드렸더니 멀리 간 며느리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러나 싶으셨던지 교외에 나가 씨앗을 받아 투명한 종이를 한쪽은 접고 두변은 바느실로 고이 고이 꿰매어 씨앗을 넣고 역시 바느실로 꿰매 작은 씨앗 봉을 편지에 넣어 보내 주셨다.
우리는 그걸 반갑게 받아 뒷마당에 심고, 일주일쯤 되니 새싹이 나오던데 새잎은 살이 붙어 통통하고 매끈해서 처녀 적 아내의 살처럼 고운데 놀랐다. 꽃이 폈을 때 잎은 딱딱해서 그런걸 몰랐다. 드디어 빨간 꽃이 이국하늘 아래서 피었다. 자식 사랑하시는 부모님의 마음을 담아 아내와 나는 다시 꺾어 옛날처럼 즐겼다.
미국 올 때도 고이 가져와 우리 집 마당 중심에 심었다. 해마다 어머니 주일쯤에 빨간꽃을 주시던 어머님이 살아 계실 때가 12년, 하늘나라로 가셔도 꽃을 주시길 지금이 26년째다. 그렇지만 나는 카네이션을 어머님에게 달아 드리지 못했다. 자식된 도리를 못하는 저에게 올해도 패랭이라는 빨간 카네이션을 주시는 어머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