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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네티컷/ 칼럼: 한 달란트 받은 종

2015-05-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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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네티컷/ 칼럼:  한 달란트 받은 종

이근원 <토링톤 한인교회 목사>

이근원 목사(토링톤 한인 교회)

성경에 달란트 비유가 있습니다. 주인이 종에게 각기 다른 양의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은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겨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종은 두 달란트를 더 남겨 역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땅에 묻어 놓았다가 그대로 한 달란트를 주인에게 가져왔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들어야 했습니다. 달란트는 2000년 전 금 33kg에 해당하는 화폐단위였습니다.

그 가치가 상당하다 보니 영어에서 “타고난 재능”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매우 큰 것을 받았는데, 다른 두 종들과 비교하니 적게 받았다고 여긴 듯합니다. 모두가 시작은 한 달란트였을 텐데 말입니다. 한 달란트를 받아 하나를 더 남겨 둘이 되고, 두 달란트에서 둘을 더 남겨 넷이 되고, 어느 한 달란트 받은 종이 그대로 가져와 그 달란트 하나를 덤으로 더 받아 다섯이 되었을 것입니다.


모두가 한 달란트에서 시작합니다. 달란트의 개수와 상관없이 받은 만큼 남기면 모두 동일한 칭찬을 듣습니다. 과정에서의 차이는 존재하나 처음과 나중은 같습니다. 종은 받은 만큼 남겨야 할 책임이 있고, 주인은 그 책임을 다한 종에게 차별 없이 대우합니다. 어떤 사람은 한 달란트를 남기고 생을 마칠 수도 있습니다. 환경이나 주어진 여건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각기 타고난 복이 다르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모든 악조건을 뚫고 헤쳐 나가는 예들도 많습니다.

어찌 되었든 하나에서 둘이 되고 다섯이 되고 열이 되는 것은 박수 받을 만한 일입니다. 그에 따른 책임을 감당하는 이를 격려하고 존중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도 세상에서 비교되는 양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대접받는 정도나 누리는 혜택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반면, 하나에서 열이 되었든 하나에서 둘이 되었든 그 결과는 받은 만큼 남겼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를 남기고자 그의 인생을 건 사람의 가치도 동등합니다. 그가 인내하고 지속할 수만 있다면, 한 달란트의 귀함을 되새김 할 수만 있다면, 그 삶은 칭찬받을 만합니다.

하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지만 유지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객관화된 한 목숨이 자기 자신이라고 환치(換置)하면 그것은 전부가 되는데도, 그 전부의 가치가 아무것도 아닌 양 치부되곤 합니다. 하나가 서지 않으면 열이 무너지고 마는데 양적인 가치만 바라볼 수는 없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양육합니다. 잘 해주고 싶은 마음은 똑같은데 자식이 받는 혜택은 차이가 있습니다. 때로 부모도 사람이기에 허점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저 내 자식이니까 사랑하니까 키웠는데, 어느 날 그 자식으로부터 부모로서 인정을 받습니다. 과정은 비교가 가능한데 결과는 비교가 불가합니다. 누구나 하나의 재능은 부여받습니다. 재능을 주는 것이 신의 역할이라면, 그 재능을 존중하는 것은 사람의 역할입니다. 생각보다 하나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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