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편 지

2015-05-02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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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병찬 엘리콧시티, MD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나는 매일 우리집 우체통을 열어본다. 그 속에 대부분의 우편물은 매달 지불 해야만 하는 공과금청구서와 광고물 또는 가끔 편지가 놓여 있다. 오늘도 우체통을 열어보니 그 속에는 우편물 2개만이 있었다.
집사람의 병원진료비 청구서와 반가운 친구의 편지였다. 그런데 나를 깜짝 놀라게 하고 어이없게 한 것은 친구의 편지 겉봉투를 보는 순간이었다. 2014년 12월15일 날짜로 대한민국 우체국 발송 소인이 찍혀 있었다. 친구의 편지는 “그리운 병찬 형님! 여전히 건강하게 미국의 즐거운 생활을 누리기 바랍니다. 2014년12월15일 친구 영길이가”라고 쓴 크리스마스 카드가 이제야 배달이 되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늦게 배달된게 기상천외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발송된 날부터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 그동안 4개월간 어디서 어떻게 헤매고 다녔는지? 이유야 어떻든 늦게나마 그 친구의 편지가 내 손에 들어 온 것이 무척이나 다행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얼마 전부터 이 친구의 편지를 내심 기다려왔기 때문이다. 살아오면서 많은 편지를 받아 보았다. 대개는 친구와 친척 아니면 지인들이다. 특히 나에게 자주 편지를 보낸 사람은 아마도 영길 이 친구가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서로가 비숫한 삶을 살아 왔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고국을 떠나 꽤 오랜 세월을 해외에서 공직자 생활을 가족과 함께 하면서도 때로는 외롭고, 마음이 허전할 때 고향의 봄과 타향살이 노래를 부르거나 친구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다스린다고 전에 그런 사연의 편지를 보내 왔었다. 나 역시 오랜 미국 생활에 젖어 보니, 고국에 대한 향수의 마음이 나와 같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래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내게 자주 편지를 보낸 것 같다.
요즘의 소식 전달은 SNS와 이메일이 주도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역시 친구에게 소식을 보낼 때는 빠르고 손쉬운 이메일을 자주 사용 한다. 그러나 그 친구는 이메일을 사용하여 나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한 번도 없다. 언제나 나에게 소식을 전 할 때는 자신의 생활상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간단하게 적어 가는 게 그의 편지 스타일 이다. 그의 편지를 보면 빼곡하게 손으로 꾹꾹 눌러쓴 그의 손 편지가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다. 이 친구의 편지 속에는 자기만의 개성과 감성이 나타난다. 그리고 사람 사는 냄새가 흘러나오는 것을 감지할 수가 있고, 특히 감성을 자극하는 위력을 갖고 있다. 그는 “내가 쓰는 편지는 나만의 땀과 노력이 깃들여져 있기에 진솔한 마음을 전할 수 있어 좋고, 비록 느리고 더디지만 손으로 꾹꾹 눌려 쓰는게 즐겁고 보람이 생긴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기나긴 세월 속에서 받은 친구의 수많은 편지를 가끔 한 장씩 넘길 때 마다 그 때 그 시대의 흐름을 한 눈에 볼 수가 있어 한 권의 역사책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흐뭇 하다. 이 친구의 느리고 더딘 편지는 언제쯤 또 다시 받아 볼 수가 있을까? 자못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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