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2015-04-14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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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윤정/워싱턴문인회

- 벨라루스 미하일 사비트스키 미술관에 다녀와서-

지리적으로 유럽의 중간에 있는 벨라루스는 역사상 많은 침공을 당하였고, 수도인 민스크가 11번에 걸쳐 초토화가 되었던 슬픈 역사를 지닌 나라다. 2차 대전을 통해 전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하였다고 한다. 전후 7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총인구가 9백만 명이 조금 넘는 수준으로 전쟁 전 1천백만 명에 달했던 인구에 못 미치니 그들의 고달팠던 역사를 짐작게 한다.
지난 2주간 민스크에 머물러 일하는 동안 주말에 미술관에 갔다. 미술관에 들어서니, 네 명의 여직원들이 나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저 아트 갤러리라고 표시된 지도를 보고 찾아가, 미술관을 다 돌아보고 나서야 그곳이 그들에게 국민 영웅으로 여겨지는 ‘미하일 사비트스키’ 라는 화가의 미술관임을 알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내 뒤로 두 여인과 한 젊은 남자가 들어섰고 그들이 내가 하는 영어를 알아듣고 통역을 해 주었다.
그들의 통역을 통해, ‘미하일 사비트스키’는 2차 대전 중 1942년에서 전쟁이 끝나는 45년까지 나치 캠프에 수용되었었고, 그때의 경험- 인간의 잔혹함과 광기-를 많은 화폭에 담아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자신의 아이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죽고 고통을 당한 그 경험을 통해 또한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는 그러한 고통의 기록들을 남김으로써 인류와 후세에 이러한 일들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꿈꾸었다고 한다. 그의 작품들을 돌아보며, ‘일제시대의 정신대 및 아픈 우리의 역사를 예술작품으로 남겨 후세와 전 인류에 잊혀지지 않도록 남길 수 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누구나 고통을 겪고 그 고통을 돌아본다는 건, 심지어 그 고통을 표현해 낸다는 것은 살과 뼈를 뚫고 곪아 들어간 상처를 쑤시어 파 내는 작업일게다. 한편으론, ‘어쩌면 그는 자신의 골수에까지 박혀 있는 그 고통을 파내어 화폭에 담아냄으로써, 스스로 치유하며 견디어 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내가 아는 이의 아들은 10여 년 전 20대 초반에 이라크전에 나가서, 전쟁터에서 죽은 미군들의 군사 표를 수거해 오는 일을 맡았는데 전쟁이 지나 30대 중반에 이른 현재까지도 그 시체들의 악령들에 시달리며 약물복용과 그로 인한 신체 마비 등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니, 내가 좋아하는 의사이면서 작가인 레이첼 나오미 레멘의 <식탁에서의 지혜>라는 책에 실렸던 한 청년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대학에서 운동선수로 잘 나가던 그 청년은 골육종이라는 병으로 한쪽 다리를 절단하게 되고, 수술 후 그는 한동안 절망과 분노로 가득 차 망가진 삶을 살았다. 그러던 중, 사고로 병으로 이런저런 이유로 신체의 부분들을 잃은 많은 이들에 대한 글을 읽고 그들의 삶을 재건하기 위한 일에 몰두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유방암으로 두 가슴을 절단한 21세의 여인을 만나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레멘은 그 청년의 이야기 끝에 “고통은 삶을 때로는 분노로, 혹은 비난과 자기연민으로 몰고 가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에게 사랑하고 삶을 섬길 수 있는 자유를 안겨 준다”고 했다. 그녀의 이 말처럼 미하일 사비트스키의 그림들은 참혹한 광경들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는 그의 생애 마지막 10여 년 동안 그의 신앙과 성서에 근거한 그림들을 그렸고, 그의 전시관 한쪽은 벨라루스의 어머니와 아이들, 추수, 곡식 등등의 평온한 일상과 민속의 흥겨움을 그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견디기 힘든 고통스러운 순간들에 놓일 때, 예수님이 너무 형이상학적으로 느껴질 때, 미하일 사비트스키의 그림들을 바라보며 인간은 그러한 순간들도 견디어낼 수 있었음을 기억할 수 있기를. 그리고 여전히 삶과 세상을 사랑하고 섬길 수 있음을 기억하기 바라며, 크고 작은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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