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산책길의 친구

2015-04-08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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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숙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산책길에서 만나, 친구가 된 중국 할머니가 있다. 자그마한 체구의 할머니는 목소리는 크고 우렁차 이 분을 보면 목소리가 큰 사람은 성격이 화통하다는 말이 틀림없는 것 같다. “No English”를 연발하는 할머니는 콘도 헬스 클럽에서 나오는 사람을 거의 안다 “Hi!” 손을 흔들며 마주치는 사람마다 일일이 반갑게 큰소리로 인사한다. 상대방도 환한 웃음 띄우고 반갑게 “Hi! Goo!” 마주 인사를 나눈다. “Hi” 한마디와 웃는 얼굴만으로도 얼마든지 사람을 사귈 수 있는 것을 이 분을 통해 알았다. 딸의 집에서 손자를 봐주며 산다는 할머니는 자기 말대로 “아는 영어 단어가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것 같다. 그러나 조금도 머뭇거리는 태도를 볼 수 없고 활달하다. 영어 구사의 힘 보다 자신감과 열린 마음, 그리고 밝은 웃음이 상대방과 통할 수 있는 힘인 것 같다. 누가 하는 말을 못알아들으면 상대방 눈을 쳐다보며 손사래를 치며 “No English”하곤 웃는다. 할머니가 아는 단어는 ‘good, daughter, grandchildren, morning, hot, cold, walk, Ok, English, China’ 등이다
우리는 나란히 걸으며 대화를 나눈다. 할머니가 손가락을 하늘로 향해 “good!”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캐나디언 구스가 V자를 그리며 날고 있었다. “Good” 이 한 마디의 감탄이 그 푸른 하늘을 나는 거위떼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잘 표현했다. ‘Good’ 간결한 이 한 마디의 말이 그 어조에 따라 헤아릴 수 없는 말의 깊이를 전달할 수 있음을 할머니와 오랜 산책으로 깨닫게 되었다. 걷다가 갑자기 오른 쪽 바지를 걷어올리면서 “No good!” 자기 무릎을 어루만진다. 무릎엔 엘라스틱 붕대가 감겨져 있다. 많이 걷고 보니 무릎이 아팠던 모양이다. 벤치를 가르키며 가자고 한다. 우리는 통성명으로 서로의 이름도 알고 나이도 안다. 자기 가슴을 치며 “구” 나도 내 가슴을 치며 “수” 그래서 우리는 서로 ‘구’와 ‘수’로 통한다. 나이도 안다. 손가락으로 여섯을 만들고 또 다섯을 만들어 65세인 걸 안다. 나도 손가락으로 내 나이를 알려 준다.
우리는 거의 매일 아침 산책길에서 만난다. 어떤 때는 내가 먼저 나와 걸으면 ‘수’ 부르는 반가움이 섞인 우렁찬 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할머니가 먼저 와 걷는 것을 보면 그 곁으로 뛰어간다.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하지만 그래도 반가워 서로 손을 잡고 “OK?”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안부를 묻는다. 두 눈과 두 손, 몸짓으로 그리고 몇 마디의 말로 서로의 의사를 표현하는데 우리는 별 불편함이 없다. 도리어 무언(無言)속에서 서로의 마음이 깊이 통한다. 할머니와 걷고 나면 청량수를 마신 뒷맛처럼 시원하고 상쾌하다. 많은 말로, 절제 받지 못한 입술로 이웃을 평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아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발걸음은 가볍고 경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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