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해의 복음

2015-03-24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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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홍 <목사>

머지않아 부활절이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 기독교에 있어 부활절은 매우 귀한 절기이다. 이절기의 참뜻을 알면 이 땅위에 참다운 화해아래 평화가 깃들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를 위해서 왔다. 사람과 하나님이 틈새가 생긴 것은 죄 때문이다. 그 죄를 없이 할 수 있는 길은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제물이 되는 것이다. 그래 예수는 인간으로 왔고 우리의 죄를 다 짊어지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다 이루었다고 했다.

하나님과 인간이 화해된 것이다. 그래서 원래의 자리인 하나님의 자녀로 돌아간 것이다. 이 사실을 예수의 부활이 확증하여 주었다. 이제부터 우리는 하나님과 화해가 되었기에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해하고 살아야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지금도 많은 사람이 서로를 증오하고 살고 있다. 심지어 도를 넘어 살인까지 한다. 이제 우리는 참으로 화해의 복음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 그것이 진정한 부활의 목적과 하나님 사랑을 보여줄 것이다. 부활은 하나님의 사랑을 최고로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다. 우리에게 화해의 명령이 되기도 한다.


이제부터 삶의 밑바닥을 철저히 더듬어 보자. 내 자신을 사랑하고 살아왔음에 자신이 있는가? 지금까지 자신을 속이며 살아온 삶이 더 많았다. 그런 삶은 남에게 사랑이나 열린 마음이 자리 할 수가 없다. 형식적인 삶을 살아온 것이다. 자신을 사랑함이 남을 사랑하는 기본이요 화해의 첫걸음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자신을 십자가 위에 자신의 생명을 내놓은 것이다. 그런 예수님의 가르침이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과 우리 사회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혹자는 자신에게 철저한 잣대를 가져다 대며 자신을 바르게 세우며 살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웃에 대한 관계나 서로 사랑과 화해를 가지고 살아왔는가? 자신에게 점수를 주다보니 남에게는 인색하고 철저한 잣대를 들이대고 자신의 의를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누가 우리에게 그런 삶의 방법을 주었는가?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라했지 남의 눈 속의 티를 보라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얼마나 자위하며 오늘을 살고 있는지 보자는 것이다. 이제부터 이웃에게 시선이 사랑으로 덧입혀지는 삶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웃이 사랑의 대상으로 보여 질 때 진정한 민족 사랑과 나라 사랑이 세워질 것이다. 우리는 덴마크가 가장 어려운 시기에 목사 그룬두비가 나와 하나님 사랑, 국가 사랑, 땅 사랑을 외치며 온 민족이 하나로 뭉치었다. 척박한 땅을 일구며 하나님 사랑을 외치었다. 그러다 보니 저절로 국가 사랑은 푸르게 국민들 사이에 피어나게 되었다. 이때 그토록 서로 미워하고 자시만 알던 사람들이 서로 화해하며 예수의 사랑으로 구석구석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북유럽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삶의 대답이다.

우리는 며칠 전 3.1절 96주년을 보냈다. 그리고 광복 70년을 바라보며 어떻게 해서든지 민족이 서로 화해하고 더 나아가 통일의 그날을 찾고 있다. 화해를 앞세우지 않으면 교육도 종교도 제도도 우리를 변화시킬 수가 없다. 세상은 흑백논리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부터 나보다 너를 배려하는 화해가 바로 부활의 참의미며 바르게 사랑을 나눌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독일이 통독을 위해 서독의 교회가 사랑의 잔치를 베풀 때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우리도 이제부터 기독교가 부활절을 앞두고 화해의 복음 사랑을 보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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