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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네티컷/ 칼럼: 엄마의 봄

2015-03-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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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선<수필가>

"눈을 떠 보니까 벌써 3월이다"
어느 방송 진행자의 간결한 멘트처럼 마음으로는 이미 봄이 와 있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봄이 아직은 멀리 있는 듯하다. 전날 저녁부터 내리던 눈발이 아침에는 어른의 정강이 까지 차오른다. 따뜻한 실내에서 눈 내리는 바깥세상은 그냥 멋있는 설경으로 느껴 오지만 창문 하나사이로 구구절절 많은 희로애락이 반복 되는 세상은 항시 예측 할 수 없는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3주간의 생활을 돌이켜 보면 맨하탄의 매서운 바람만큼이나 가슴속이 써늘해 진다. 친정엄마가 갑작스럽게 병원으로 옮겨졌고 다급하게 진행된 심장대수술, 수술을 집도한 의사선생님은 수술이 성공적 이라고 하는데 닷새 동안이나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엄마, 속수무책으로 중환자실에서의 하루하루는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한 혹독한 고통의 나날이었다. 마주하고 있어도 복잡한 기계의 힘을 의지한 가느다란 숨결만 느껴 올 뿐 아무런 반응이 없는 엄마. 곁에서 눈앞에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초조함은 점점 온 몸의 통증으로 파고들었다.


심장에서 뇌로 연결 되는 대동맥 중간 부분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위급한 상황에서 수술을 하게 된 엄마는 엿새째가 되어 서야 몇 번 눈을 깜박이는 반응을 보였다. 눈 뜨는 모습을 재차 확인해야 할 것 같은 심정은 반복해서 엄마를 불렀고 간호사들까지 합세해 잘 안 되는 발음으로 "엄마"라고 부르며 치료에 최선을 다해 주었다 20일간의 중환자실에서 또 다른 작은 수술을 두 번 더 하고 깃털 같이 가벼워진 몸이 되어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버린 엄마. 그 모습에서 80생애를 든든히 버티어온 흔적은 찾아 볼 길이 없었다.

정적만이 깊어지는 병실에서 엄마의 소지품을 정리하다 수술 직전 까지 입고 계셨던 바지를 찾았다 어디로 달아날 새라 깊은 속주머니에 넣고 커다란 옷핀으로 주머니 입구를 봉해서 꼭꼭 숨겨 놓은 지퍼백이 나왔다 그 안에는 네 귀퉁이가 헤어진 하얀 봉투가 또 그 속에는 도톰한 지폐가 가지런히 엄마의 온기를 품고 있었다. 자식들이 절기 때마다 손에 쥐어준 작은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항상 몸에 지니고 계셨던 것이다.

제일 먼저 응급실에 모시고 갔던 동생의 말이 엄마가 마취를 하면서도 바지를 벗지 않으려고 때를 썼다고 한다. 이제는 다 제갈 길로 가서 자신의 품에 맘대로 품어 보지 못하는 자식들 대신 조금씩 두툼해지는 봉투를 항상 몸에 간직 하시고 위안을 삼았을 엄마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온다.

그저 별 일 없이 살아 주는 것이 효도라 여기며 존재만을 확인하고 대면대면 하던 이기적인 사랑이 부끄럽고 후회로 밀려온다. 젊은 시절 쌀가마니도 둘러맸다는 엄마는 인생의 굽어진 굴곡을 넘다 보니 약해진 부분이 남들 보다 더 많이 생겼다.
지병으로 약은 달고 사셨지만 갑자기 큰 수술을 하리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엄마의 수술을 계기로 다시 한번 삶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 그런 상념은 편안한 상태에서는 하게 되지 않는 걸까 아무런 걱정이 없을 때는 즐거운 일만 생각 하는 것이 정상적인지 모른다. 대게는 어려운 일에 부딪칠 때 고뇌하게 되고 또 다시 망각한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그로 인해 지혜를 얻고 결국엔 깨닫게 되고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다 이해하고 돌아서 보면 이미 때는 늦어있다고 한다.

삶이 아름다운 것은 사랑하며 살 수 있는 한번 뿐인 인생이기 때문 이라고 한다. 또한 삶이란 항상 가능성이 있어서 아름다운 것 이라고 한다.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온 엄마는 가족들 가까운 요양병원으로 입원해 나머지 치료를 받게 되었다. 점점 호전 되어가고 이전 보다 더 건강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여 지고 있다. 지금 보다 더 사랑하며 살아 갈 수 있도록 한번 뿐인 엄마의 인생에 새로운 봄날이 속히 찾아오길 간절히 두 손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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