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흐르는 눈물이 보석이 된다 해도

2015-03-05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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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경전 수필가, MD

매 주말마다 들르는 화원에서 새로운 난(蘭)을 한 주 또 구입해왔다. 난을 기르는 연륜은 짧지만 그런대로 기르는 방법을 터득해 나가는 중이다. 계절을 앞서가며 갖가지 꽃을 피우고 있는 화원에서 화분 없이 공중에 떠 자라고 있는 난, 고개가 아프도록 감상하고 있다가 가장 좋아하는 라벤더 색 일단 골랐다가 꽃이 너무 피어있기에 다음 꽃 필 때까지의 기다림이 너무 아쉬워 그 옆에 꽃과 잎이 더욱 싱싱하고 뿌리가 튼튼하게 뻗어가고 있는 흑장미 색 난을 골랐다. 화분이 없다고 했지마는 실은 바닥이 십자형과 네 기둥, 네모나게 만들어진 프레임에는 양 사방 아래 위가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아무 방해 없이 햇빛을 충분히 받고, 마음 가는대로 쭉쭉 뻗어갈 수 있다. 그리고 굵은 철사가 어른 양팔 길이로 위로 솟아있고 끝이 후크로 돼 있어서 천정에 걸게 돼 있다. 수분 공급은 2-3일에 한 번씩 스프레이 해주면 된단다.
집에 와서 걸어놓을 곳을 살피다가 천정에서 쉬고 있는 중형의 팬을 보고 다섯 개의 날개 가운데 하나에 걸어보았다. 그 밑으로 유리 식탁이 있다. 식탁에는 거의 매일 꽃이 떨어지지 않지마는 이번에는 난을 위하여 손바닥 크기의 침봉에 안개꽃을 가득 꽂아보았다. 눈송이 같은 작은 꽃이 한아름 뭉게구름처럼 풍요롭게 퍼져간다. 안개꽃 사이사이에 아기 주먹보다 크게 피어있는 짙고 또는 옅은 라벤더 색 카네이션 몇 송이, 가장 엷은 보라색 카네이션이 우뚝 솟아올라와 천정에서 늘어진 난의 뿌리와 손을 맞잡은 풍경은 마치 다정한 남매를 연상케 한다.
오늘 밤부터 눈이 내린다니 보라색 아이리스 한 다발 더 사 와서 안개꽃 사이사이에 꽂아보았다. 식탁이 화사해진 것을 본 남편이 손님상인줄 알고 자기 방으로 가서 의자를 하나 더 가지고 왔다. 이럭저럭하다보니 저녁시간이다. 서투른 솜씨로 저녁준비를 하고 있는데 귀에 익은 멜로디가 감미롭게 흘러나오고 있다. TV 화면에는 높고 얕은 산봉오리 아래 아득히 넓은 밭에서 스페인 봉부가 쟁기질을 하고 있다. 저 곡은 한국에 살 때 아이스 스케이팅 종목에서 러시아 국가 대표로 나온 세계정상의 커플이 환상의 댄싱을 출 때 나온 곡이다. 너무나 고혹적인 선율 깊은 감명을 받고 방송국에 전화하여 곡명을 알게 되었고 이곳으로 이사 오기 직전까지 즐겨듣던 곡이다. 그러나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 어느 짐 속으로 숨어버렸을까. 아직 풀지 못한 짐 속에 낮잠 자고 있을까. 요즘 새삼스럽게 본능적 감정의 격동이 중심을 잃고 한 쪽으로 쏠릴 때. 또는 ‘흐르는 눈물이 보석이 된다 하더라도’ 흘려서는 안 되는 상황인데 또 여섯 개의 현으로 연주되는 선율이 모든 고뇌를 흡수해 주고 마음의 평정을 되찾게 해주는 마력,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기타 연주의 귀재, 자퀸 로드리게즈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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