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진(작가/ 에디슨)
어렸을 때 어머님과 외할머님은 유난히도 한증을 즐기셨다. 그래서 아버님은 집 앞 산모퉁이에 작은 한증막을 짓고 그곳 아궁이 깊숙이 마른장작을 밀어 넣어 한증막을 절절 끓게 하여 어머님과 외할머님을 기쁘게 해 드렸는데 그런 한증기운 탓이었을까. 어머님은 백수를 넘기셨고 외할머님은 구순을 넘겨 장수를 하셨다.
한증막 옆으로는 까마득히 높은 왕솔 한그루가 서있었는데 그 소나무 밑에만 가면 언제나 시원한 솔바람이 마치 노래처럼 들려와서 나는 아버님이 아궁이에 장작을 밀어 넣는 동안 그곳 평상위에 누워서 지나가는 솔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했었다.
그 후 나는 도시로 나와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아 도회지 고층아파트 속에 묻혀서 살게 되었는데 그런 중에도 마음속으로는 늘상 그때 그 소나무 소리를 그리워했다.
처음 내가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 와 집을 찾을 때였다. 신기한 미국인 가정집들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지금의 집을 만나게 되었다. 유난히도 집 주위에 나무가 많았는데 희한하게도 앞마당에 커다란 소나무가 한 구루 버티고 있는 것이다.
동양인의 사고로 본다면 도저히 이런 나무가 서있을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집이어서 복덕방 아저씨도 크게 기대하지 않고 우리를 데려갔던 것이라는데 나는 이 집을 보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아, 얼마나 근사하고 멋진 집인가. 이역만리 미국 땅에 와서 이런 소나무가 있는 집을 만나다니, 그것도 앞마당에 이렇게 떡 버티고 서서…
나는 이 집이 하나님이 이미 오래 전부터 나를 위해 점지해 놓은 집으로만 생각되어 황송한 마음으로 즉석에서 계약서에 싸인을 했다. 막상 집안에 짐을 풀어놓고 창밖을 내다보니 눈앞에 있는 소나무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조망의 거의 대부분을 가리고 있어서 답답하기 이를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고향 한증막 옆에 버티고 서있던 왕솔처럼 이 나무도 한여름에 시원한 노랫소리를 들려 줄 것을 기대하며 툴툴거리는 집사람을 겨우겨우 달래었다. 그러나 봄이 가고 여름이 와도 기대했던 노랫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상하다. 소나무에서 솔바람 소리가 나지 않다니…”
꼼꼼히 살펴보니 이곳 소나무는 고향의 소나무와는 모양부터가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솔잎이 가늘고 무성한데다가 아래 땅위에서부터 많은 솔가지가 얽히고 설 켜서 빈틈없이 콱 막혀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 소나무들은 숨이 막혀 소리를 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당장 전지가위와 톱을 사와 소나무의 허리아래를 말끔하게 잘라주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고향의 소나무처럼 숨통도 터주고 모양도 갖추어 주었지만 여전히 소리는 내지를 못한다.
“바람이 스쳐도 소리를 낼 줄을 모르는 멍텅구리 같으니…”
비록 그런 멍텅구리 소나무가 창밖을 가리고 서있어도 그래도 나는 이 소나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귓속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고향에서 들었던 그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껏 아내의 불평을 들으면서도 이 소나무를 소중하게 모시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에서 나서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자연은 우리를 지켜주는 영원한 모태라고도 한다. 돌이켜 보면 비록 힘들고 어려웠던 유년기를 보냈던 나지만 그래도 그런 자연의 노랫소리가 있어 나는 한평생을 정서의 결핍을 모르고 건강하게 잘 살아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요즘 아이들은 게임기를 손에 들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고 한다. 이런 아이들에게 자연이란 어떤 의미일까. 우리가 자연을 훼손하고 핍박하면 그만큼 우리는 자연 순화의 기회를 잃게 되어 육신은 더 병들어 가고 사회는 절망에 빠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자연을 지키고 보호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