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한입, 나 한입. 아, 맛있다. 이렇게 나누어 먹으며 사는 게 인생 아니겠냐?”
딱 그런 대화가 들리는 것 같다. 그런데 서로 나누어 먹고 있는 인생(?)은 두 사람이 아니고 하나는 50대 정도로 보이는 털이 수북한 아저씨고, 곁에서 입 쩍 벌리고 널름 받아 삼키는 상대방은 누런 털이 북실북실한 견공 씨다.
여행하다 점심 먹기 위해 들린 와플 집에서 웨이트리스가 갔다 주는 따끈한 와플, 위에 얹힌 쵸컬릿이 녹아내리고 있는 와플을 한 귀퉁이 잘라 입에 넣고 기분 좋아라 창밖을 내다보는데 눈에 튀어 들어온 풍경이었다.
“와, 저럴 수가!” 입맛 다셔가며 먹고 있던 내 와플은 잊고 창밖에 보이는 둘의 모습에 눈이 꽂혀버렸다. 잔디밭 한구석 나무 그늘에서 따스한 한낮의 소풍(?)을 즐기는 두 양반. 권커니 잣커니 하며 서로 한입씩 베어 물고 있는 둘: ‘너’는 견공씨, ‘나’는 너절한 배낭을 비스듬히 등지고 앉아 같이 식사 나누고 있는 아저씨. 한입씩 베어 무는 점심은 와플. 물론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유리창 안으로 들리진 않는다. 하지만 너 한입, 나 한입 하며 나누어 먹는 모습에서 눈길을 뗄 수가 없다.
아저씨는 샤워는 커녕 세수나 면도 한지도 꽤 됐나보다. 머리털, 수염이 점심 나누고 있는 누렁이와 막상막하다. 세상이야 어찌 돌아가건 꼬리 신나게 흔들어 대며 덥석 받아먹는 견공. 그런 개를 보며 만족한 웃음 띠고 있는 아저씨. 둘의 모양새가 꿀보다 단 정이 넘쳐 흐르고 끝없이 행복해 보인다. 걱정이라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똑 닮았다. 그야말로 행복한 커플(?)의 모습 아닌가!
저 견공은 얼마나 행복할까? 홈리스 아저씨는?
깜빡 잊었던 내 와플을 내려다봤다. 와플에 얹힌 쵸컬릿 칩이 녹아 와플의 네모난 구멍 속으로 고여 들고 있다. 오늘은 와플 중에도 정말 좋아하는 쵸컬릿 와플을 주문했더랬다.
“행복한 커플 보느라 내 와플은 깜박했네!” 포크로 잘라 한입 물고 다시 창밖을 본다. 난 간단하고 단순한 사람. 와플, 특히 쵸컬릿 와플 하나면 더없이 행복해 실실 웃으며 콧노래 불러대는 인생이다. “인생은 나그넷길 아니라 와플에 녹아내리는 쵸컬릿 길,” 하며 말이다. 남편이 걸핏하면 하는 소리가 있다. “넌 돈 안 들어 참 좋다. 여행하다 배고프면 기껏 와플 집에 들어가 싸구려 와플 하나 사 주면 입이 헤벌쩍 아니냐?”
그런데 창밖에 기대앉아 개와 함께 점심 먹고 있는 홈리스 아저씬 나보다 더 행복해 보이질 않는가? 그럴 수가? 감히 어떻게 창 안쪽 테이블에 앉은 나보다? 웨이트리스가 가져다주는 와플을 포크로 칼질하며 잘난 척 사는 나보다 더 행복할 수가?
어쩌면 저 둘은 이 근처의 단골일지 모른다. 둘이 나누어 먹고 있는 와플은 이 가게 주인이나 아니면 맘씨 착한 웨이트리스가 이맘 때면 나타나곤 하는 이 둘을 기억했다가 주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도 개를 키울지 모르지. 개가 배고플까 걱정돼 먹을 걸 줄게야. 그런 착한 인심 가진 사람들 의지해 사는 커플일게야. 나조차도 홈리스 따라다니는 개가 배고프겠지… 싶잖은가 말이다.
견공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르다. 나도 개 좋아하지만 진짜 개 사랑하는 사람의 근처는 못 간다. 이들은 서로 입 맞추고, 핥고, 물고, 빤다. 난 그린 못한다. 침 질질 흘리는 개, 언제나 질척하고 싸늘한 코, 시궁창이나 뒷골목이라면 더 신나서 킁킁 대며 똥과 오물에 코와 입을 들이박는 녀석. 그런 녀석이 내 코나 입에 가까이 오는 건 사양이다. 나로 말하자면 그런 녀석의 질척한 사랑공세 받기엔 우아하고 고상한 여자, 즉 잘난 인간이라고 자처하는 바 아닌가? 그런데 창밖의 견공 씨와 홈리스 아저씨가 나보다 더 만족하고 행복해? 그럴 수가! 환상이겠지. 행복도 키 재듯 서로 대 볼 수 있을까?
어쨌거나 구름 한 점 없이 멋진 날, 길게 누워 너 한입 나 한입 나누어 먹고 있는 커플이 눈부시다. 내가 시인이라면, 화가라면 한 폭의 그림으로, 혹은 시로 남길 텐데…. 그리고 ‘나’의 ‘너’와 나누고 싶다. 앞으로 올 날들의 첫날인 오늘,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오늘, 오늘 아침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