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겨울 거리에서

2015-02-24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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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혜선 워싱턴 문인회

넓은 보폭으로 나아간다

영하의 날씨에 때 묻은 거적만 두른 남자
휠체어에 앉아 있다
한 번도 인사한 적 없어 이제 도와줄 수도 없는 사이
매일같이 마주쳤던 지난 어느 날로 돌아갈 순 없을까
하이, 오늘부터 말을 걸어볼까

내 이웃사랑은 겨울 한 철
잠깐 피었다 사라지는 마른 버짐같은 건 아닐까
까슬하게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
갈비뼈 안쪽 빈틈을 찾아 번져나가는


다시 발걸음은 빨라지는데 딛는 걸음마다 허옇게
버짐이 피어오른다
발꿈치가 가렵다

겨울이면 어김없이 도지는 피부병
큰길 모퉁이마다 울리는 자선냄비 종소리를 들으며
지긋지긋하게 온몸 구석을 긁어보지만
살과 기름을 먹고 나면 곧 나아질 버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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