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섞여 사는 문화

2015-02-23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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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 <목사>

미국은 2월을 흑인의 달로 정하여 흑백의 조화 있는 생활철학을 강조해 왔다. 흑인뿐이겠는가. 전 세계의 인종이 모여 사는 곳이 미국이다. 2월이 생일인 링컨 대통령은 ‘흑인노예 해방령’(Emancipation Proclamation)을 내려 이미 150년 전에(1863) 인종차별 철폐에 나섰다.

미국 속의 한국인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한국에서 체험 할 수 없었던 다인종 복합문화 사회를 극복하고 동화하는 실험에 2백만 동포가 참가하고 있는 것이다. 내 집, 내 교회, 내 회사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끼리끼리 병‘을 극복하고 섞여 사는 지혜를 익히는 것이 미주 이민의 중요한 과제이다.


필자가 70년대 초 미국에 이민 왔을 때 미 동북부 전체에 한인교회는 일곱 개 뿐이었다. 지금은 뉴욕과 뉴저지에만 673교회이고(크리스천 투데이) 미 전국적으로는 4,075개 교회이다. 교회가 너무 많이 선다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이도 있지만 초창기 한인교회의 활동을 안다면 그런 말은 못한다. 새 이민을 위한 주거지 안내, 학교와 직장 알선, 통역과 서류 작성 등 한인 변호사도 봉사센터도 없던 그 당시 교회가 담당한 자원봉사는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다양하였다.

미국 속의 한국인은 어쩔 수 없이 복합문화 속에 산다. 1세는 전통적인 가족주의가 지배적이고 1.5세나 2세는 미국의 개인주의를 배우며 거기에 젖어있다. 가족주의는 가정뿐이 아니라 한인교회와 한인회사의 운영체제에도 그대로 연결된다.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 전혀 다르며 개인 존중, 자유, 자유경쟁 등 발전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어 가족주의와의 융합에 있어서 많이 연구되어야 할 과제이다.

미국 속의 한국인이 직면하는 복합문화에는 의식주의(Ritualism)와 실용주의(Pragmatism)의 충돌도 있다. 한국인의 전통은 의(儀, Rite)와 예(禮, Courtesy)를 따르는 행동규범이다. 의식주의의 부정적인 면은 체면, 눈치, 격식에 매인다는 점이다. 미국의 실용주의는 스피디하고 방법보다 성취에 목적을 둔다.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려면 높임말, 낮춤말, 예사말 등의 격식을 갖추어야 한다. 대화 할 때 어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 한국의 예로는 버릇없는 짓이고, 미국인은 ‘내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있구나.“하고 호감을 가진다.

복합문화에는 감정주의(Emotionalism) 혹은 심미(審美)주의와 이성주의(Rationalism)의 차이도 있다. 한국인은 풍부한 감정을 지닌다. 아름다움을 음미하며 사는 정서가 한국인의 특색이다. 미국의 이성주의는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그 판단에 의해 경쟁하며 이기려고 한다. 그것을 미국인은 성공이라고 부른다. 한국인의 감정주의는 두 가지로 행동에 나타난다. 정(情)과 흥(興)이다. 인간관계는 정으로 맺어지며 흥이 나야(신이 나야) 행동한다. 한국 기독교가 불과 백 여 년 만에 세계 초유의 비약적 발전을 한 것도 부흥회를 통하여 한국인의 뿌리인 감정주의와 접목이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속에 사는 한국인의 역사적 과제는 가족주의와 개인주의, 의식주의와 실용주의, 감정주의와 이성주의를 어떻게 가정과 사회에서 융합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한국인 1세와 2세를 망라하고 학계와 종교계와 문화계와 사회가 다 함께 연구하여 바람직한 korean-American 상(相)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복합민족 복합문화의 융화를 위하여 미국이 과거에 사용해 온 ‘용광로 방법(Melting pot)’은 효율적이 아니다. ‘샐러드 사발 방법(Salad bowl)’이 적절하다. 샐러드는 여러 가지 모양과 색채와 맛을 가진 채소가 모여 각자의 특색을 유지하면서도 전체로서 더 높은 차원의 맛을 창출하는 특색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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