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할머니의 굽은 등

2015-02-17 (화) 12:00:00
크게 작게

▶ 김인숙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고 나오는데, 저 만치서 허리가 완전히 90도로 꺾인 할머니의 손을 잡고 걷는 백발의 아들 모습이 보였다. 대낮의 하얀 반달이 할머니의 동그란 등을 굽어보는 것 같다. 한 발 한 발 힘겹게 걸으시는 할머니, 그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가는 아들, 조심스레 부축해 가는 아들의 온 몸속에서 흐르는 정성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한다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다.
할머니는 90세가 넘으셨다 한다. 투명한 피부의 얼굴이 맑았다. 당뇨병의 후유증으로 인해 앞을 못 보신다는 할머니는 교회 친교실의 어지러운 분위기 속에서 하나의 조각품처럼, 아니 마치 홀로 고립된 섬처럼 앉아 계셨다 . 아기 손처럼 조그마한 손을 잡으며 인사를 하자 온화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해맑은 아기의 웃음처럼 선해보였다.
초년에 많은 자식을 두고 홀로 되신 할머니는 일본의 압제와 해방 그리고 6.25 등 한국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꿋꿋하게 사신 할머니. 지금은 보이지 않은 세상을 앞에 두고 초연한 모습으로 앉아계시며 무얼 생각하실까? 시간이 되자 아들이 어머니를 모시고 떠날 준비를 하는데 잘못 닿으면 깨트러질 것 같은 보물을 다루듯 했다 어머니가 부축 받고 의자에 일어서시는데 90도로 굽은 허리에 허리뼈가 동그라니 튀어나와 곱추의 등과 같았다 그런데 튀어나온 둥근 그런 허리뼈가 친근함과 따뜻함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미켈란젤로는 깨어진 대리석 한 덩어리에서 그 속에 천사의 모습을 보았다 했는데, 나는 곱추 같은 등을 보며 할머니의 고생과 희생을 볼 수 있었다. 내 것을 챙기지 않는, 나를 내어버리고 자식들을 송두리채 가슴에 안아버리는 어머니의 숭고한 사랑. 나라가 가난했고 국민이 가난했던 때, 연민의 정으로 서로를 보살피고 부모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식들을 키웠고 자식들은 부모를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고 형제들은 서로를 아끼던 시절이,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의 영화필름 처럼 지나갔다. 어쩌면 물질적인 가난은 오히려 가족 간의 희생과 사랑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 된 것이 아닐까. 나가시는 할머니의 뒷모습에 우리 어머니 모습과 할머니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나타났다 ‘아~ 엄머이~’ 북받치는 그리움과 잘 모시지 못함의 죄책감으로 가슴이 메어졌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