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의 정답

2015-01-30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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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한 프레드릭스버그, VA

지난주는 나에겐 특별한 한 주일이었다. 내가 10년 전에 모셨던 성직자가 잠시 이곳을 방문 했다. 십년 전에 미국에서 사목하고 은퇴한 노 성직자이시다. 이 분은 성질이 대단해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판단되면 굽히지 않는 분이셨다
오죽하면 어떤 이는 이 분을 두고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성직자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그만큼 직설과 불같은 성격으로 불협화음이 있었다. 떠나 실 때 여기를 향해서 오줌도 누지 않겠다고 했었는데 다시 오셨다
이곳에 오자마자 하는 말이 “00야, 나무 잘 크냐?" 였다. 사목하실 때 교회 울타리는 OK목장 결투에서나 볼 수 있었던 울타리를 전나무로 교체하고 여름내 보살피셨다. 그리고 교회를 호텔 같이 고쳐 놓은 후 떠나셨다.
내가 지난 여름 한국 방문 시 이 분을 잠깐 뵙고 왔다. 그때도 나에게 묻는 말이 “나무는 잘 크고 있냐?" 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오랜만에 만나면 서로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 게 보통인데 그 분은 아니었다. 성직자도 상처를 받는구나.... 내 머리 속에는 누구의 잘못이냐, 왜 서로가 상처를 받고 풀지를 못할까 하는 생각이 가득했다.
동창으로 부터 카톡이 왔다. 카톡에 있는 글을 읽으며 정답을 찾고 있다.
수업시간에 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느 중년 부부가 유람선에서 해상 재난을 당했는데 구조 함정에는 자리가 하나밖에 없었다. 이 때 남편은 부인을 남겨두고 혼자 구조선에 올랐고 부인은 침몰하는 배 위에서 남편을 향해 소리쳤다. 선생님은 여기까지 얘기하고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여러분, 부인이 남편에게 무슨 말을 했을 까요?" 얘기를 듣던 학생들은 모두 격분하여 말하기를 “당신을 저주해요. 내가 정말 눈이 삐었지" 라고들 소리쳤다.
이때 선생님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한 학생을 발견하고 그의 생각을 물었다. 그랬더니 그 학생이 말하길 “그 부인은 ‘우리 아이 잘 부탁해요‘라고 했을 거예요”라고 했다. 선생님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너 그 얘기 예전에 들어봤니?" 학생은 머리를 흔들며 “아니요, 그런데 제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아버지한테 그렇게 말했어요."라고 답했다. 선생님은 그제야 감격해 하며 “정답이다"고 외쳤다.
그리고 선생님은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갔다. 배는 침몰했고 남편은 집으로 돌아와 딸을 잘 키웠고, 몇 년 후 병으로 죽었다. 딸이 아빠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일기장을 발견했는데, 아빠와 엄마가 유람선 여행을 갔을 때 엄마는 이미 고칠 수 없는 중병에 걸려 있었던 상태였고 그때 마침 재난 사고가 발생했다. 그때 아빠는 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버릴 수가 없었던 것 이었다. 아빠의 일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그 때 나도 당신과 함께 죽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지. 우리의 딸 때문에 당신만 깊은 바다에 잠들게 할 수 밖에 없었어.”
이야기가 끝나자 교실은 조용했다. 선생님은 알 수 있었다. 학생들도 이 이야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았다는 것을.
세상에는 옳고 그름이 항상 복잡하게 얽혀 있어 쉽게 판단할 수 없을 경우가 많다.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만 상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삶의 정답은 없다”여서 일까? 그래서 성경에 남을 판단하지 말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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