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장(終章)에 들어선 나이에 방황이라니, 어떤 방면에서라도 받은 상처, 마음이 아플 때 깊이 이해해주고 격앙된 감정을 흡수, 전환해주는 주파가 없었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삭막했을 것이다.
땅 속에서 솟아나오는 식물은 보면 볼수록 희열을 느끼게 한다. 그 힘의 원천이라던가 성분 분석은 접어두고 식물을 돌보기 위해 힘겹게 노동을 하다보면 에너지 소모하는 것이 즐겁다.
물론 그 노동이라는 것이 움직임 반, 감상하는 것 반이다.
해마다 사계절을 통해 자연은 뚜렷한 변화를 각인시켜주면서 단 한번도 뚝같지 않으니 지루함이 없다. 사람은 긴 여로 속에서 한 두 번은 심각한 방황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방황은 젊었을 때 삶의 목표라고 할까 설계였을 것이다. 더욱 그 나이에는 행로(行路) 수정이 가능하고 여유만만한 방황이다.
포치(pouch) 안에 있는 은행나무잎이 황금색으로 물들어가고 단풍은 붉다못해 갈색으로 타버렸다. 맞은 편에 있는 작은 책장 앞에 원형으로 다듬어진 진홍색의 크리스마스 선인장(cactus), 너플 너플 삼층으로 된 치마를 입고 명주실타래 같은 수술 끝에 촛불을 켜고 마치 승전을 축하하며 행진하는 ‘드골’의 전사(戰士)들 같다.
기름이라도 바른 듯 반짝이는 동백잎새 어린 나무에서 언제 그 정열적인 꽃을 피워 카르멘의 마리카락에 꽂을까. 즐거운 기다림이다. 두루뭉실 둔삼각형의 연시, 많은 잎을 겨울 여로에 내보내고 앙상한 가지에 감이 매달려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유리 테이블 위에 상자 째 놓여있다.
조류(鳥類)중에서 유일하게 노부모에게 효도한다는 까마귀, 혹시라도 날아와 쪼아먹게 포치의 금망사문 걷어버릴까 방황한다.
단 둘의 생활이라 크지 않은 무 한번에 다 먹을 수 없기에 삭뚝 잘라 대바구니에 넣어 두었더니 잎이 청청하게 나와 있고 함께 있던 양파 역시 동조하여 골대잎이 올라가고 있다. 포치 안이 풍요롭다. 책을 골라 읽으려고 나왔는데 사방의 식물을 보면서 마음이 한결 상쾌해진다.
안개처럼 덮여있던 나의 방황은 한여름 개구쟁이 연못에 돌 던져 개구리 도망가고 퍼진 파문처럼 원을 그리며 사라져 버린다. 넓적한 잎새 밑에 있던 무화과(fig) 하나 따 먹고 포치 안을 서성이면 삶에 대한 우문현답이 끊임없이 독백으로 이어지고 황금빛으로 곱게 물든 은행잎 따서 책갈피에 넣어두고.
알다가도 모르는 것 투성이의 인생 그래도 살아 볼 가치가 있는 것, 몸도 마음도 책장 넘기기에 바쁜 세모, 또 한 해가 조용히 사뿐사뿐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