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한항공의 땅콩봉지

2014-12-19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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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재옥 (의사)
대한항공의 전 부사장 조현아의 ‘땅콩회항’ 사건은 국제적인 망신이다. 승무원이 땅콩봉지를 건네줄 때 봉지뚜껑을 열고 접시에 가지런히 담아서 올려 바쳐야 하는데 뜯지 않은 봉지 채 그대로 놓고 가버렸다는 사실이 화근을 불러 일으켰다. 과자봉지를 뜯어야 하느냐, 아니면 뜯지 말아야 하느냐 그것이 문제였다. 한번 봉인이 된 봉지는 고객의 의향에 따라 오픈이 가능할 것이다.

이 사건을 접하면서 의과대학 시절, 세균학에 관한 실습과정이 생각난다. 균이 잘 자라는 온상 위에 손바닥을 갖다 댄 후 3일 후에 다시 와서 점검해 보니 여러 가지 종류의 균들이 포도송이처럼 이미 자라고 있었다. 육안으로는 깨끗해 보이는 손바닥에 이렇게도 많은 균이 득실거리고 있었을까 너무 놀라웠다.

병원에서는 뚜껑 열린 약병은 모두 폐기처분 한다. 포장이 열린 주사기도 두 번 다시 쓰지 않는다. 다른 환자를 접촉할 때는 반드시 새 장갑을 사용한다. 한번 봉지가 뜯긴 음식, 뚜껑 열린 물병 혹은 유통기한이 지난 봉지는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봉지를 여는 즉시 기내공간에 날아다니는 균들이 달라붙는다. 맨손으로 집는 음식도 불결하다. 화장실에서 깨끗이 손을 닦았다고 해도 문고리를 잡는 순간 벌써 균은 전달된다. 다시 말해 비행기 내부는 각국에서 온 환자들로 차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기침하는 고객은 벌써 기내 공기를 오염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가 에볼라환자인지도 의심스럽다.

조현아는 항공기를 후진시켜 고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무장을 강제로 내리게 했다. 배는 움직여 출항 즉시 모든 권한은 함장에게 위임된다. 대통령이나 어느 누구도 단지 승객일 뿐이다. 함장의 명령에 모두 복종할 뿐이다. 비행기는 배보다 훨씬 더 많은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 때문에 기장은 275명의 승객의 생명을 보호하는 절대권을 가지고 있다.

재벌들이 자식들에게 자신들이 일구어 놓은 부를 대물려 주려는 마음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회사의 중책을 맡기려면 최소한의 자질은 갖추어 놓은 후 직분을 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지구상에 조롱거리가 되는 이런 불미스러운 사건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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