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단추를 채우며

2014-12-03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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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혜선

급하지 않은 기다림은
한 개의 구멍으로 간다

“눈이 어두워 이제 바늘귀가 안 보이네”
온돌마루에 배를 깔고 누워 책 읽는 어린 소녀와
조심스레 손녀에게 바늘과 실을 부탁하는 할머니
그 방에서부터
한 줄로 나란히 선 단추들처럼
차례차례 꿰어지는 구멍이 있고, 실이 있다

셔츠 단 한쪽에 늘어선 구멍들과
차례로 맞추어질 건너편의 단추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처럼
멀지도 가깝지도
크지도 작지도 않게, 어김없이


침으로 축축해진 실 끝을 따라 파고드는
몸이 떨리도록 정확한 꿰맞춤

잘못 채운 구멍의 끝에서라면 반드시 길을 잃고 말지

무서웠나봐
나의 작은 구멍에
단추도, 바늘도, 어떠한 미래도 담을 수가 없을까봐

껌뻑껌뻑 거울을 본다
채 채워주지 못한 단추들이 비눗방울처럼 부푼다, 떠오른다
놓칠세라 방울을 향해 손을 뻗지만
앞자락이 풀리고, 나는 그만
속을 끌러 울고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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