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지역에 괜찮은 시조시인이 한 분 살고 있음을 몰랐다는 자책감이 “꽃구름에 머물다”를 읽고 난 첫 감상이다. 이제 신인이라고 부끄러워하는 중년의 여류시인을 대하면서 가람 이병기 선생과 전라북도 최고의 시인, 최승범 선생을 떠올리며 그 분들에게 이 시집을 보내드리고 싶어졌다. 가람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최승범 선생은 고령에 시달리고 있으니 갑자기 외로움이 다가 왔다.
취환이란 호를 쓰고 있는 이 시조시인은 미술을 전공한 분, 아마 시조에 어울리는 동양화가 아닐까 짐작할 수 있다. 비취반지라는 취환이란 호가 마음에 든다, 따님의 결혼에 쓴 시조 한편을 영역하는 인연이 나를 “꽃구름에 머물게” 하고 있으니 감사하다. 우리나라 시는 시조가 뿌리이며 시조는 간결하면서도 운율을 지키는 법을 간직한 형태. 시는 자유시화, 산문화하고 있지만 시조의 묘미를 지키는 분이 있으니 다행이며 한국 시의 세계를 폭넓게 하고 있다.
서문을 쓰신 박이도 교수는 3 4 조의 3장 6구에 충실하려는 취환을 높이 평가했고 발문을 쓰신 성춘복 시인은 “그림 하나” “난초” “얼음꽃”을 언급하고 있으나 나는 “세한도, 추사의 그림을 보다”를 언급하고 싶다. 독자에 대한 시인의 서비스를 모른다고 할 수 없지만 세한도를 모르는 독자가 있다면 그의 무지를 통탄해도 좋다. 조선 역사에 학자, 시인, 화가, 서예가로 아직 정정하게 살아있는 추사를 모른다면 그 무지는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추사가 제주도 한림에 유배되어 그린 한라산 정상의 키 작은 소나무, 혹독한 추위와 바다 파도, 바람에 지쳐서도 그대로 서 있는 소나무에서 추사의 모습을 바라보게 할 수 있는 먹으로 그린 그림, 그 옆에 그의 서예 한 폭이 빛난다.
나이 든 사람으로 전하고 싶은 한마디. 너무 가벼워도 시조가 되기 어렵고, 단순한 사물을 바라보아도 단순하게 보지 않아야 품위 있는 시, 시조가 나온다고 말하고 싶다. 버릴 것은 버리고 남길 것은 남겨야 시가 된다. 신인으로써 쓴 아까운 초기 작품들 몇은 나중에 부끄러움으로 남을 것이다. 3, 4개월 후에 다시 서랍에서 꺼내어 읽을 때, 읽을 만하면 그때 그 시를 살리고 추고해야 할 것이다.
꽃구름에 머물지 말고 천둥이 이는 먹구름에도 시조 한 수가 나올 수 있다면 취환은 그때 성숙한 시조 시인이 되리라고 믿는다. 건강과 건필, 문운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