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2014-11-20 (목) 12:00:00
“사후 20년 만에 대한민국 인권상 수상”이라는 대서특필의 기사를 본다. 요즘은 북한의 인권탄압을 고발하느라 너나 할 것 없이 한마디씩 한다. 북한이 인권을 완전히 무시한 지는 50년이 넘었다는 것은 천하가 아는 사실이 아닌가. 이주헌 박사와 이계월 선교사는 인권 때문에 하바로프스크에 가신 것이 아니다. 물론 그분들이 인권을 누구보다 존경하고 그 보호를 위하여 용감하셨다는 것은 말할 여지가 없다.
나는 이주헌 선교사님의 성품을 너무도 잘 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선교자임을 더욱 존경하였다. 무서움을 모르고 용감하고, 주님의 말씀을 철저히 이행하였든 순교자로서 주님의 뜻을 받들어 하는 사역을 위해서는 그들에게 무서움이 없었다.
나는 늘 이주헌 선교사님(나는 늘 그분을 이주헌 대위라고 불렀다)이 바른 말을 거침없이 하는 분으로 존경해왔었다. 정의를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은 분이다.
처음에 하바로프스크로 떠난다는 소식을 접하고 전혀 놀랍지 않았다. 그 때는 러시아가 철저한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 사회로 전화되어 가던 혼란한 사회였다. 바른 말만 하신 그분이 여간 염려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주헌대위의 용기를 알기 때문에 속으로 그럴 만 하신 분이라고 여겼다. 그 소식을 전해준 레나들빌에 계신 이주헌 선교사의 대학동기이신 문영식 선배에게 나는 별로 놀랍지 않다고 말했다. 구호품 몇 점을 보내 드렸다.
나는 순교자를 흠모한다. 나는 그들의 거대한 용기에 내 자신이 너무 작다는 것을 늘 느끼지만 그들의 용기를 배우고 배우면 나도 좀 더 용기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고 산다.
기독교 순교자는 예수의 길을 그대로 따르는 사람들이다. 예수의 제자들을 시작해서 수많은 순교자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이 늘 멀리 있는 역사적 인물로 막연히 존경만 하였다. 그들은 대부분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느냐?’ 하는 질문에 ‘예스와 노’의 선택 중 ‘예스’를 택하는 용기였다.
그러나 그 간단한 ‘예스’는 그들의 생명을 같이 하는 것이다. 내 가까이에 포리카프 같고 사도 바울처럼 용감한 선교자가 있었으며 그들이 순교하였다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잘 아는 사람이 순교하였다 하는 것은 금으로도 살 수 없는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그 것도 내가 그럴만한 분으로 믿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구나 “러시아 땅에 떨어진 두 밀알” (김동수 교수 편집)을 읽으시면 그들의 용기를 확연히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대한민국 인권상’ 보다 훨씬 고귀한 상을 이미 주님이 하사 하셨을 것으로 나는 믿는다. 그들은 값진 소금이요 빛이라는 것 말할 나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