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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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역에 묻힌 파란눈의 천사들

2014-11-1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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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파송 1,200여명 미국선교사 연구한 손상웅 목사

미주 한인 초기 이민사를 연구해왔던 손상웅 목사(사진)가 ‘청라 언덕에 잠든 파란 눈의 이방인’이란 제목으로 첫 번 째 선교사 열전을 냈다.
버지니아에서 한인교회를 목회하고 은퇴한 그는 워싱턴에서 공부한 이승만 박사 등 숨겨져 있던 미주한인 이민사들을 다수 발굴해 관심을 끌었고 7년 전부터 한국으로 파송됐던 선교사들의 기록을 주로 연구해왔다.
손 목사가 찾아내고 자료를 정리한 한국 파송 선교사는 약 1,200여명. 이 명단에는 영국, 호주, 캐나다 등에서 파송된 선교사도 일부 있다. 구한말 시대인 1884년부터 1984년까지 100년간 한국에서 활동한 외국 선교사가 3,000여명이라고 하는데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인물들을 직접 확인한 셈이다.
‘청라 언덕에 잠든 파란 눈의 이방인’은 특별히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선교사 13명의 기록을 담았다. 영남신학대학교가 60주년을 맞이해 믿음의 발자취를 찾아보자는 취지로 선교 역사를 전공한 손상웅 목사에게 연구와 정리를 위촉했고 일차로 동산병원 내 묘지인 ‘은혜정원’에 영면한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모은 것이 ‘청라 언덕에…’다.
앞으로 손 목사는 교육, 의료 선교사들의 유적을 찾아 정리하고 책으로 낼 계획인데 각 두 권 정도의 분량을 예상하고 있다.
“당시 한국에 온 미국 선교사들은 대부분 농촌 출신이었어요. 네브라스카에서 온 분도 계셨으니까요. 지금도 그곳은 인구가 많지 않은데 그때는 얼마나 황량한 곳이었까요? 거기에서 멀리 동쪽 끝에 있는 식민지 나라에 찾아와 빛을 전한 선교사들은 정말 대단한 분들이었습니다.”
일본이나 중국은 어느 정도 개화가 돼 선교사들이 많았지만 미개한 나라 한국은 인기가 없었다. 그런 곳을 이들은 찾은 것이다.
손 목사는 “공동 묘지에 지나지 않았던 청라 언덕에 선교사들이 집을 짓고 들어와 ‘미국인 거주지’가 되고 지금은 은혜 정원으로 바뀌었으니 그야말로 은혜”라고 소개했다.
선교사 열전 시리즈를 읽고 한 명이라도 선교 후보자가 생긴다면 책이 그 가치를 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손 목사는 1,200여명의 기록도 앞으로 정리할 계획이다.
그에 앞서 본보에 약 10회에 걸쳐 버지니아주 출신의 한국선교사들 이야기를 연재한다.
말이 1,200명이지 한 사람, 한 사람 추적하는데 꽤나 공을 들여야 했다. 보통 2~3주는 걸려야 10여 페이지 정도의 자료를 모을 수 있었다.
조사의 출발점은 워싱턴 DC 내 의회도서관이다. 선교사의 이름을 컴퓨터에 넣어 옛날 신문이나 족보를 찾아보는 홈페이지 등에서 관련 언급이 없는지 확인한다. 1810년부터 시작된 인구조사(census)를 뒤지고, 취미로 묘지를 사진 찍어 올리는 홈페이지를 들어가고, 구글을 검색하는 등 관련 기록 수집에 먼저 주력한다.
그 다음엔 전화나 이메일로 확이하기. 선교사가 살았던 지역의 도서관, 출석했던 교회, 종사했던 직장 등에 일일이 전화해 흔적이 남아 있는지 물었다. 필라델피아 소재 장로교 역사관, 드루대학 내의 감리교 고문서 도서관 등도 좋은 정보원 이었다.
미국 선교사들을 연구하면서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은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밭으로 한인들이 이민을 시작한 후에도 미국교회들은 한인들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점. 나중에 이를 알게 된 선교사들은 한국에서 배를 타고 돌아올 때 샌프란시스코나 LA에 내리면 꼭 한인교회에 들러 선교 보고와 함께 고향 소식을 전달하며 긴밀한 유대를 유지했다.
손 목사는 “모든 것이 낙후된 한국에서 선교사들은 최고 수준의 교육으로 한인들을 계몽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며 “청교도의 귀한 전통 아래 세워진 미국처럼 한국에 또 하나의 청교도 국가를 세우려 했던 선교사들에게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버지니아장로교회를 담임했던 손 목사는 현재는 시드선교회 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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