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안단테 칸타빌레

2014-09-17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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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사람들과 인사할 때 “어떻게 지내십니까?” 라고 묻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라고 묻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어디에는 공간적 장소가 아닌 심리적 장소를 말한다. 우리 안에는 모순된 감정들과 유아기적 감정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분노나 열등감, 좌절감 같은 것이 우리 안에 있을 경우 어떤 난관에 부딪쳤을 때 이겨내기가 쉽지 않다.

우리의 생(生)은 수많은 고비 고비들로 이루어져 있다. 올곧게 뻗어 나가는 대나무의 삶과도 닮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무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마디, 놀랍게도 그 간극에는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성장의 힘이 들어 있다. 이 간극을 제대로 메워 주지 않으면 성장하기 어렵다.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멈춤이고 휴식이다.
이 멈춤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세차게 내달리던 강한 에너지가 방향을 잃고 무기력해질 수 있다. 이럴 때는 잠시 멈추었다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 잠깐의 멈춤이 새로운 삶의 동력과 어떠한 고난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많은 현대인이 앓고 있는 심리적인 병은 계속 내달리지 않으면 못 견디는 불안감과 강박증이다. 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면 자신이 일군 인생의 꽃은 시들어버리고 만다. 수시로 멈춰 서서 물을 주고 거름도 주고 하면서 자신을 돌보아야 하는 이유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말을 타고 달리다가 잠시 멈추어 뒤를 돌아보는 것도 너무 빨리 달리면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극심한 생활고로 최근 아내와 아들을 죽이고 방화한 후 자신도 목숨을 끊은 한인가정의 참변은 문제의 가장이 평소 마음 다스리기에 좀 더 관심을 기울였다면 이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민생활은 언어나 문화, 제도가 너무 달라 적응이 쉽지 않다. 치열한 경쟁사회, 지속되는 경기침체에 견디기 어려운 조건들도 갈수록 많아진다. 자신을 강하게 연마하지 않으면 넘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어떻게든 빨리 정착하려고 하는 조급한 의미의 ‘빨리 빨리 문화’로 인해 우리는 잠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달려 왔다. 자기성찰이나 마음 다스리기 같은 것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인생에 완벽이란 있을 수 없다. 여유를 갖는다면 없는 속에서도 행복은 얼마든지 추구 할 수 있다. 고난이나 고통도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내달리기만 하며 종종 걸음 치지 말자. 급할수록 삶의 속도를 ‘안단테 칸타빌레(느린 속도로 걸어가듯이)’로 늦출 필요가 있다. 평상시 마음에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는 극단적인 선택이란 있을 수 없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인생의 고통은 제거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렇다고 부딪치는 여러 가지 고통을 필요이상 증폭시키지는 말자. 어차피 인생은 모두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게 아니던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작가로 성공했지만 그의 삶은 매우 불행했다. 자살도 여러 번 기도했다. 아내는 아름답고 선하고 재산도 많았다고 한다. 본인도 재주도 뛰어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늘 허무감과 고독감으로 우울한 삶을 살았다.
인생에서 만족감을 느끼며 살기 위해서는 일의 부담감과 심리적 중압감에서 이따금 벗어나 영혼을 풍요롭게 해주는 휴식이 필요하다. 우리 주위에는 크고 작은 고민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문제는 그것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주변의 도움이 있을 수 있지만 우선은 본인이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정신력을 길러야 한다.

눈만 뜨면 우리는 치열하게 경쟁적인 삶을 살고 있다. 이 와중에 문제가 생긴다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인생 고비마다 삶의 한 부분 한 부분을 소중히 여길 때 우리는 비로소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는 대나무처럼 튼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여주영 주필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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