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량치차오, 조선의 망국을 기록하다 / 최형욱 엮고 옮김·글항아리 펴냄
외국인의 입장에서 일본제국주의의 침략과 구한말 대한제국의 붕괴 과정을 서술한 글들은 많다. 어떤 사람들은 조선의 쇠퇴과정을, 어떤 이는 일제의 팽창원인을 썼다. 이 가운데 중국의 대표적인 계몽지식인인 량치차오(梁啓超ㆍ양계초 1873~1929)의 글은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는 스승인 캉유웨이(康有爲ㆍ강유위)를 도와 우리의 갑신정변과 비슷한 ‘무술변법’을 1898년 시도했고 보수파의 반격을 받아 실패한 후 일본으로 망명했다. 이후 중화제국의 붕괴과정을 하릴없이 지켜보던 그는 비슷한 처지의 조선에 회한을 느낀다.
“이제 조선은 끝났다. 지금부터 세상에 조선의 역사가 다시 있을 수 없고 오직 일본 번속 일부분으로서의 역사만 있을 뿐이다.” 1904년 9월24일 그가 발표한 ‘조선망국사략’(朝鮮亡國史略)에 나오는 내용이다.
‘량치차오, 조선의 망국을 기록하다’는 구한말ㆍ식민지시대 초창기 량치차오가 집중적으로 발표한 조선 관련 논설 11편을 따로 떼어내 최형욱 한양대 중문과 교수가 엮고 번역했다.
을사늑약 1년 뒤인 1906년 ‘지난 1년 동안의 세계 대사건의 기록-조선의 멸망’에서 량치차오는 “조선을 망하게 한 자는 처음에는 중국인이었고, 이어서 러시아인이었으며, 끝은 일본인이었다”고 하면서도 “그렇지만 중국ㆍ러시아ㆍ일본인이 조선을 망하게 한 것이 아니라 조선이 스스로 망한 것이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조선에 대해서 부정적인 논조만 있는 것은 아니다. 1909년 ‘가을바람이 등나무를 꺾다’(秋風斷藤曲)’는 바로 안중근 의사를 읊은 글이다 ‘대국은 선진(일본 전국시대의 장수)의 수급을 슬퍼하고 망국의 유민은 위공(삼국시대 촉나라 장수)의 피에 눈물 흩뿌린다’는 내용은 당시에 역시 침략당해가던 중국에 등장한 최대의 적인 동시에 개혁의 롤모델이기도 했던 이토 히로부미를 안중근 의사가 사살한 데 대한 중국 지식인의 복잡한 입장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