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박한 제기들… 친근한 불상·탱화

2014-07-16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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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크마 ‘조선미술대전’ - 주제별 주요 작품 ③ 유교와 불교 미술품

▶ 절제미 담긴 사기·유기그릇 성리학의 효사상 반영, 개인영역서 숭배 불교신앙 사리탑 등 불멸의 힘 담겨

소박한 제기들… 친근한 불상·탱화

보물 1327호 ‘석조 지장보살좌상’(1515년).

소박한 제기들… 친근한 불상·탱화

조선시대의 소박성과 금욕적 미감을 보여주는 사기그릇 및 유기그릇 등 제례용품.

‘왕과 궁궐’ ‘조선사회’에 이어 다음에 나오는 두 전시실은 한국 기독교 신자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을 테지만 한국민의 정서와 문화, 관습과 전통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유교와 불교에 관한 미술품을 보여준다.

나의 친구 한 사람은 일년에 여섯 번씩 제사를 지낸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시부모, 시조부모, 시증조부모님들을 위해 이 미국 땅에서 한 달 건너 제사상을 차린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가족이 많지는 않겠지만 이민 와서까지 제사를 지낼 정도로 유교 가치관에 따른 조상숭배의식은 한민족의 생활 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다.

불교는 또 어떤가? 삼국시대로부터 통일신라, 고려, 조선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2,000년동안 한국인의 삶과 신앙, 정신과 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남긴 불교는 단지 사찰미술로서만이 아니라 한국민의 정서와 미감 형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두 전시실은 종교적인 시각으로보다는 한민족의 DNA에 새겨진 정체성을 보여주는 미술품이자 전통이고 역사로서 차근차근 들여다보는 것이 좋겠다.


◆조상 제사와 유교 가치관

조선시대의 성리학적 윤리는 조상에 정성을 표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 문화를 근본적으로 확립시켰다. 유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세 가지 관계는 군신, 부자, 부부인데, 이 중에서도 조상과 부모를 존중하는 효도사상은 조선사회의 모든 계층에 배어 있었다.

궁궐에서는 선대왕들을 추모하는 의식이 국가 행사를 주도하였고, 일반사회에서는 과거 불교 승려들에 의해 수행되었던 의식이 민간 영역으로 이관되어 개인이 스스로 제사를 집전할 수 있게 되었다. 제사를 잘 드리는 것이 건전한 사회와 가정의 안전을 보장한다고 여겨졌다.

여기 전시된 사기그릇과 유기그릇들은 제례행사에 사용된 제기들로서, 조선시대의 소박성과 금욕적 미감을 보여주는 좋은 유물들이다. 또 아주 심플한 제상과 제사용 의자가 눈에 띄는데 이런 제사용 가구들은 오랜 세월 대를 물려 사용됐고, 못 쓰게 되면 버리지 않고 땅에 조심스럽게 매장함으로써 조상의 영혼에 대한 깊은 헌신을 표현했다.

보물 1056호인 ‘백자 청화철화삼산뇌문산뢰’(15세기)의 아름다운 자태도 이 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조선 불교의 지속과 변화


과거 천년 이상 국교였던 불교는 조선왕조가 신 유교주의인 성리학을 받아들임에 따라 주도세력에서 밀려났고 공공생활에서 추방되었다. 불교가 맡았던 많은 국가 의식은 유교 제식으로 대체되었고, 많은 불교 사원들이 산속으로 깊이 들어가며 쇠퇴하였지만 그렇다고 불교신앙 자체가 금지된 것은 아니었다.

실상 유교는 종교라기보다 사상이었으므로, 개인적 영역에서의 불교신앙은 계속 큰 영향을 갖고 있었다. 또한 불교신앙의 숭배물과 관련 예술품들은 왕실 가족, 양반 그리고 평민들에 의해 개인적으로 계속해서 제작 의뢰되었고 사찰에는 화려한 불교미술이 유지됐다.

여기 전시된 다양한 탱화, 조각, 성골함 및 불상들은 한국 불교의 지속적이고 역동적인 전통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유교 국가 내에서 이 종교가 견뎌낸 불멸의 힘을 보여준다.

보물 제928호 ‘봉인사 부도암지 사리탑 및 사리장엄구’(1620)와 보물 제1327호 ‘석조 지장보살좌상’(1515)을 비롯해 업경과 업경대, 청동은입사향완, 석조관음보살좌상, 아마타극락회도, 산신도, 서산대사진영 등을 볼 수 있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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