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짝사랑 인화초

2013-12-2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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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혜란 / 약사

엊그제 태어난 것 같은 우리 손녀가 어느새 15개월이 되었는데 거의 9달까지 누워서 우유만 먹고 잠만 자던 아이가 기어 다니는가 싶더니 어느새 걸어 다니는 것이 자연스러워 졌다. 그 애가 눈을 뜨고 세상이라는 곳을 돌아보니 배울 것도 많고 신기한 것도 많아 보이는지 계속 무어라 중얼거리며 호기심으로 흔들어보고 만져보기도 한다.

그런데 며칠 전 며느리가 손녀를 두어 시간 우리에게 부탁하고 사무실을 갔다. 내가 일하는 약국 안에서 어찌나 모든 것을 하나씩 만지며 돌아다니며 어떤 물건은 완전히 딴 곳에다 옮겨 놓는 것이었다. 아마 자기 생각에는 물건들이 잘못 놓였다고 생각했었는지 하도 정신을 빼서 나는 그 애를 데리고 약국 뒤 스테이션 웨곤에 히터를 틀고 앉아 있었다.

차 안은 따뜻해지고 아이는 졸렸는지 의자에 앉아 잠이 드는듯하여 나도 잠시 눈을 붙이려했다. 그런데 조금 후 부럭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한살이 갓 지난 손녀딸은 어느새 클리넥스 박스에서 종이를 뽑아내어 유리창을 닦더니 그 다음은 자동차 안의 선반들을 닦고 있었다. 아마 자기 엄마가 청소하는 것을 유심히 보았다가 그대로 하는듯 하지만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이제 애기 침대에서 나온 지 4~5달, 세상 밖에서 익힐 것도 많지만 그 짧은 시간 저 아이가 그런 것들을 배웠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옛 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귀여운 손자 손녀들을 무릎에 앉히고 다락에 감춰둔 사탕으로 뇌물을 먹이며 볼을 문질러가며 짝사랑을 알릴 때 “너는 우리 집 인화초야”라 불렀다 한다. 눈만 뜨면 아른 아른 나타나는 모습이 이건 첫사랑에 더해서 정녕 짝사랑임에 틀림없다.

이제 우리 3세들이 밝고 건강하고 스마트하게 잘 자라 어디서 무엇을 하든 한국인의 당당함을 잃지 말고, 한국인의 뜨거운 피를 오래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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